질문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
AI가 건축가의 역할을 대체할 것인가?
요즘 건축가들 사이에서 자주 오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AI가 우리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 아닌가?’ 라는 질문입니다. 동시에 건축 강좌와 프로그램 중 가장 주목받는 주제 역시 ‘AI를 활용한 디자인’입니다. 이 흐름 속에서 건축가가 던질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AI가 무엇을 바꿀 것인가가 아닌, ‘우리가 어떻게 AI를 활용해서 설계 과정을 재구성할 것인가?’ 입니다. 건축가의 역할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지, 어떤 준비를 해나가야 할지를 고민할 시점입니다.
글 & 자료. 안성우 건축가 (정림건축 뉴테크SU 리더)
편집. 정림건축 브랜드팀
건축을 뒷받침하는 기술로
많은 분들이 건축에서 AI를 떠올리면 미드저니(Midjourney)처럼 인상적인 이미지를 생성하는 도구를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구글 나노바나나의 등장으로 기존 이미지 제작에 쓰이던 프롬프트 노하우가 무색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정림의 AI WORKS 공모전이나 주니어 커미티를 살펴보면 여전히 발표의 중심은 ‘AI이미지 생성’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AI는 이미 멋진 건축 외관을 흉내내는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이미지의 화려함 뒤에 있는 구조적 질서와 설계 논리를 이해하고, 실제로 구현 가능한 건축을 뒷받침하는 기술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책상 위 제도판에서 CAD로, CAD에서 BIM으로 이어진 흐름은 이제 AI에 이르렀습니다.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해 있지만, 변화는 업무와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쉽게 인식되지 않을 뿐입니다. 앞으로 건축에서 AI의 존재감은 ‘얼마나 멋진 그림을 그려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타당한 논리를 제시하느냐’로 증명될 것입니다. 상상력이라는 펜을 든 디자이너이자, 논리라는 계산기를 든 엔지니어. 이 두 가지 시선을 모두 갖춘 AI는 설게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AI의 과정이 담긴 미래의 건축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강렬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AI의 거대한 잠재력 ‘Smart Assistant’
AI가 그려내는 이미지는 창의적입니다. 마가렛 보든1의 창의성 이론2에 비춰보면, AI는 수만 명의 건축가가 축적해온 데이터를 빠르게 조합하며(조합적 창의성), 수천 개의 대안을 지치지 않고 탐색하며(탐색적 창의성), 기존의 문법을 넘어서는 방식(변혁적 창의성)으로 우리에게 영감을 줍니다. 하지만 이는 AI가 가진 잠재력의 일부일 뿐입니다. 더 중요한 점은 ‘이미지 생성기’를 넘어 설계 프로세스 전반을 혁신적으로 이해하는 ‘스마트한 조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지 생성 너머 AI가 발휘하는 효율성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획과 법규 검토 단계에서는 대지 조건만 입력해도 관련 법규를 충족하는 매스를 빠르게 도출하고 사업성 분석까지 지원합니다. 설계 과정에서 반복적인 작업을 자동화하여 주차 구획 배치, 코어 계획, 화장실 레이아웃 등을 알고리즘 기반으로 정리하여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이렇게 확보된 시간과 여유는 건축가가 더 본질적인 고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절약된 시간은 건축물의 형태나 공간감, 사용자의 경험을 고안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구조 최적화와 같은 공학적 분석에서도 AI는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설계 초기 단계부터 일조량과 바람길, 에너지 효율을 시뮬레이션하고, 합리적인 구조 시스템을 검토함으로써 잦은 설계 변경을 줄이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미지 생성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미래의 주도권을 위한 기본적인 태도
과거의 건축가는 도시와 건축 전반을 조망하며 방향을 설정하는 마스터 플래너이자 마스터 아키텍트의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설계 과정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오늘날의 건축가는 개별 업무와 조율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머지않아 각자의 책상 위에 ‘나만의 비서’와 같은 에이전트 AI가 자리 잡게 된다면, 건축가는 다시 한 번 프로젝트 전체를 조망하고 판단하는 역할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직접 모든 선을 그리는 테크니션을 넘어, 프롬프트로 다양한 가능성을 이끌어내고 결과를 선별하며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역할입니다.
이제 2D 도면이나 페이퍼 중심의 사고방식이라는 오랜 도구를 내려놓고,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설계 과정에 더해가야 할 때입니다. 앞으로 건축가는 프롬프트로 AI라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다양한 결과물을 선별하고 큐레이팅하며, 최종적인 판단과 책임을 맡는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미래의 주도권은 AI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건축가에게 달려 있습니다. 데이터의 파도 위에서 지휘봉을 드는 선택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새로운 설계의 주도권을 손에 쥐기 위한 기본적인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변화의 흐름 앞에서 주저하기보다, 그 흐름을 이해하고 타는 것.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준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