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팀 대담에 앞서
생각공장 당산은 현상설계공모부터 준공까지 한 팀으로 작업했던 이례적인 사례다. 프로젝트는 구성원 모두가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같은 목표를 향해 노력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운영되었고, 구성원들은 각자 맡은 일이 뚜렷하면서도 팀으로서 시너지를 내기 위한 다양한 활동과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팀원 개개인은 아직 불완전한 건축가일지라도, 팀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100% 이상 수행한다면 더욱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참석. 강석규, 김동관, 김정연, 오성종, 윤나예
진행. 박민호, 오가영
정리. 윤솔희
기억에 남는 순간
김동관
당산동 생각공장(이하 생각공장) 설계안을 작성하기까지 매주 클라이언트와 회의하고 안을 디벨롭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현상설계공모에 제안서를 낼 때, 설계도서를 납품할 때, 그리고 착공에 들어갈 때 매번 또 다른 힘듦이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그 여정을 옆에서 함께 겪어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습니다. 분양 건물이라 예정 공사기간이 빠듯했고 프로젝트 규모에 비해 팀원이 많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지식산업센터라는 유형을 팀원 모두가 처음 접했던 와중에 그 유형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지하 선큰 광장이라는 실험에 도전했던 거예요. 팀원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다 해내지 못했다면 오늘의 모습을 보기 어려웠을 겁니다.
오성종
체력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던 건 분명하지만 이렇게 무사히 준공 모습을 볼 수 있어 만족해요. 당시 4년차였던 (김)정연 님이 구조 도면을 단독으로 맡아 모두 작성했던 게 기억납니다. 처음에 잘해낼 수 있을지 옆에서 걱정도 많이 했는데, 정말 놀랐어요. 저연차에 선큰 광장 구조를 이해하며 전문가 수준의 도면을 작성해낸다는 건 제가 봐도 쉽지 않은 일이었거든요. 성명준 소장님과 협업하며 완성도를 높여 간 프로페셔널함에 감동했습니다.
김정연
구조 도면을 그릴 때는 어렵다, 아쉽다 그런 감상을 느낄 겨를도 없었던 것 같아요. (웃음) 현장 감리(CM) 역시 정림건축에서 맡아서 매 시기에 현장 사진을 받아볼 수 있었는데요.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광경을 보며 ‘잘 지어지고 있구나’ 안도했던 순간이 떠올라요. (윤)나예 님은 어떠세요? 기억 나는 순간이 있어요?
윤나예
당산동 생각공장 프로젝트는 정림건축에 신입으로 입사해 맡은 첫 프로젝트였어요. 저는 특히 모형 제작을 담당했는데 지금 돌이켜봐도 얼마나 쉴 새 없이 많이 만들었던지,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로 한동안 모형 만들기를 외면할 정도였습니다. (웃음) 전체적으로는 다른 팀원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해요. 이 프로젝트에 밀착해 기여하는 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김동관
아뇨, 절대 그렇지 않았어요. 일례를 말해 볼게요. 생각공장 선큰 광장의 가로 폭이 18m인 것 모두 기억하시죠. 설계할 때 과연 이 정도 폭이 적정할지 확신하기 쉽지 않았어요. 스케치업 렌더링을 참고한다 해도 이는 오감이 아닌 시각에 의한 판단이 될 테니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었죠. 이때 나예 님이 만들어준 모형들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데요. 모형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도시적 맥락에 순응하는 규모, 아름다운 비례, 실용적인 가능성 등을 발견한 것이지요. 저는 나예 님이 만들었던 단면 모형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그 모형 하나가 이 프로젝트를 다 설명해주거든요. 물론 신입사원으로서 여러 일을 조망하고 싶었을 것 같아요. 모형 제작뿐만 아니라 디자인, 디테일 연구 등의 역할을 아우르며 프로젝트를 배워가는 것은 아틀리에 운영방식에 가깝다면, 한 단계씩 업무 범위를 넓혀가는 정림건축의 방식은 전문성의 깊이를 더하기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강석규
이 프로젝트에서는 각자가 맡은 역할이 뚜렷했어요. 저는 입면도, 부분상세도 작성을 비롯해 도시계획시설을 담당했고 정연 님은 구조도, (오)성종 님은 평면도, 나예 님은 모형 제작, 보고서 작성 등을 맡아 모두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움직였죠. 한 명이라도 아프면 큰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빈 틈이 없었는데, 사실 이건 팀 운영 차원에서는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선큰 광장
김동관
맞아요. 강력한 팀워크는 시너지 효과를 내는 동시에 갈등에 취약할 때도 있거든요. 한 개동과 두 개동에 로비를 각각 두었던 안에서, 3개 동 전체를 위한 공용 로비를 선큰 광장에 두는 안으로 넘어가던 때에는 이견이 부딪히면서 가장 큰 위기가 왔던 시기예요.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공용 로비란 건물을 방문하는 누구에게나 입주 업체가 “메인 로비로 오세요”라며 가리켜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했어요. 팀원들은 그 메인 로비의 위치와 이유에 의문이 있었고, 사무실 분위기는 한동안 냉기가 감돌 정도로 싸늘했어요. 그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고 양측을 설득하는 게 제 역할이었는데 그 갈등을 해결할 실마리도 결국 디자인이었어요. 디자인 디벨롭(DD) 이후 이 냉랭한 긴장 상태는 한층 완화될 수 있었죠. 모두가 설계안에 대한 여러 의견과 제안을 경청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내포된 의미, 이 건물의 역할과 기능 등을 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오성종
현상설계공모 심사 당시 심사위원들 사이의 가장 큰 논쟁거리가 선큰 광장이었고, 정림건축의 설계안을 뽑은 이유 역시 선큰 광장이었다는 말이 기억나요. 경제성, 효율성만 쫓는 지식산업센터에서 이러한 디자인적 도전이 과연 유의미한지 아무래도 다들 고민했던 것 같아요. 선큰 광장이 그만큼 도시에 강력하게 말을 거는 파격적인 건축 어휘였던 건 분명해요.
강석규
결국 마지막에 TF팀과 임원 등 관계자들이 모여서 선큰 광장을 존치할지 말지 투표했었잖아요. 그때 유지하자는 의견이 과반수를 살짝 넘었던 것 같아요. 특히 젊은 분들이 좋아해주셨고요. (웃음) 당시 결정권을 가진 상무님이 저희 손을 들어주신 점도 컸지만요. 저는 사실 선큰 광장에 공용 로비를 삽입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입장이었어요. 모형과 렌더링을 보고 이야기를 거듭 나누며 공용 로비가 있는 디자인의 장점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김동관
갑자기 생각났는데 건축 심의할 때 말이에요. 원래 설계사에서 한 명만 오라고 했는데 긴장되고 간절한 마음에 제가 (성)명준 님을 따라 들어갔어요. 심의위원들 앞에서 명준 님의 5분 발표가 있은 다음, 계획되지도 않은 시간을 비집고 끼어들어가 렌더링 영상과 CG 등을 보여주며 프레젠테이션을 이어갔단 말이죠. 그때 심의위원분들이 “저렇게만(계획안처럼만) 지어달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시선 간섭 필름지만 잘 붙여두라면서요. 그때 우리 팀원들이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심의도 물론 무리 없이 단번에 통과했고요.
회의와 소통, 완성에 이르는 과정
오성종
건축 심의뿐만 아니라 그다음, 다다음 절차까지도 물흐르듯 흘렀잖아요. 클라이언트 사에서 저희랑 소통하던 설계 파트 담당자 분 말씀이 ‘모든 과정에서 이렇게 제동 없이 한 번에 간 적이 처음이었다고, 너무 좋았다’고 소회를 몇 번이고 밝혀주실 정도였어요. 일정 관리 면에서도 주간회의를 기준으로 일주일 루틴이 있었잖아요. 매주 수요일 주간회의를 마치고 칼퇴한 뒤 목, 금, 월요일은 야근하고, 회의 전날인 화요일은 상황에 따라 야근하면서요. 주말 출근 없이 주중에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김동관
클라이언트인 SK D&D, 콘셉트사인 매니페스토와 매주 주간회의를 하니 얼마나 많은 안건과 제안, 수정과 결정이 있었겠어요. 이때 우리의 전략은 한마디로 ‘여러분이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수준의 프레젠테이션을 계속 보여주겠다’였어요. 정림건축의 전문성을 토대로 신뢰를 높이겠다는 의도였죠. 회의마다 그간의 사항을 업데이트하고 최대한 우리 관점과 목소리를 입혀 한 단계 높은 제안을 보여줬던 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오성종
저는 착공 이후부터 TL 역할을 맡게 되면서 현장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담당했는데, 클라이언트와 주고받은 메일들을 세어보니 1500통이 넘어가더라고요. 일주일에 거의 30통씩 쓴 셈이에요. 그렇게 촉박하게 진행되었던 과정 속에서 힘이 되었던 건 역시 팀원 모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서포트해줬다는 점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참, TL로서 좋았던 점이 또 하나가 매주 공사 현황 사진을 제일 먼저 받아서 단톡방에 함께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김동관
성종 님이 현장의 변화를 매번 신속하고 정확하게 팔로우업하지 않았다면 준공 모습도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보기에 두드러지지 않을지 몰라도 지식산업센터 유형에서 보지 못했던 도전이 많이 있거든요. 1층 바닥의 인조 대리석, 외장재인 벽돌, 유리, 루버, 난간 등의 사양, 색, 치수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선택한 게 없어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저층부 선큰 광장과 지하 1층의 공용 로비, 지상 1-2층의 상가가 곧 이 건물의 아이덴티티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도시와 관계 맺는 방식, 시민을 환대하는 태도, 생각공장 사용자를 위하는 배려가 이곳에 있어요. 그것도 클라이언트의 경제적인 지표를 동시에 충족하면서요. 디자인위원 답사를 갔을 때, 기현철 님의 첫 마디가 바로 “도시가 바뀌었네” 였어요. 이 얼마나 우리가 바라던 바인가요. 2018년 겨울 첫 답사에 느꼈던 동네 분위기를 떠올려 보세요. 높다란 담이 버티고 서 있던 골목이 휑하고 삭막했잖아요. 이제는 이 일대의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도시계획시설까지 있어 유용하고 소중한 시민 공간이 되었죠.
앞으로 생각공장 당산은
윤나예
2022년 가을 입주를 시작했으니 앞으로 사용자들이 상주하는 시간이 이곳에 쌓일 텐데요. 저희 계획대로 잘 사용된다면 정말 좋겠어요.
오성종
SK D&D가 몇 년 간 관리한다고 들었어요. 관리주체가 있으니까 사용자들 간의 질서와 규칙도 뿌리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선큰 광장으로 사람을 끌어 모아 이용을 활성화하려던 생각이 도시의 공공성으로 확장되어 더욱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김정연
제 기억에 처음 이곳 부지는 문래역, 영등포구청역과도 거리가 조금 있는 편이었고 인근에 아파트 단지와 학교가 있음에도 환경이 쾌적하지만은 않았어요. 이제 정돈된 유리 커튼월 건물과 모두의 마당으로 열린 선큰 광장으로 다시 탄생했으니 정말 일대 풍경이 달라질 것 같아요. 앞으로 펼쳐질 모습이 기대됩니다.
강석규
저도 이곳이 도심 속 작은 벤치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그재그로 난 1층 상가 테라스에 사람들이 머물다가 가고, 선큰 광장에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모습을 상상해요. 비워 둔 만큼 새로운 이야기로 가득 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동관
준공 이후에 이렇게 소회를 나누고 피드백을 할 자리가 있어 참 좋습니다. 준공 프로젝트를 몇 개 경험해보니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 팀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홀로 남았을 때가 제일 우울하더라고요. (웃음) 2023년 여름 즈음 화창한 어느 날에 당산동에서 같이 점심 먹고 커피 한 잔 할까요? 사용자들이 어떻게 공간을 쓰는지도 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