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은 ‘배경으로서의 건축’을 추구하는 정림건축의 초기 디자인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다. 고건축의 비례 체계를 적용한 외관으로 한국식 신고전주의 양식을 보이며 공간의 평면 구성과 인테리어 계획, 자재 및 공법 채택에 이르기까지 ‘전통 건축의 현대화’에 설계의 역점을 맞추었다.
본관은 북악산에 둘러싸인 옛 경복궁 후원 대지에서 남측으로 경복궁과 서울 도심부를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한다. 미묘한 곡선을 이루는 팔작지붕 처마선과 청기와로 마감된 색감은 주변 고궁 및 자연 경관과 조우한다. 배치는 조선 시대 서원(書院)과 같이 중앙에 본채를, 좌우에 별채를 두는 형태로 정부의 집무 및 행사 기능을 충족한다. 별채는 본채보다 낮은 기단 위에 건축되어 내부로 진입할수록 점진적인 상승감과 깊이감을 느끼도록 했다. 안마당에 설치된 현관채는 조형적 기능과 규모가 큰 본채의 위압감을 완화시킨다. 실내 공간 또한 한국 전통 양식에 근접하면서도 당대의 격조 높은 공간을 연출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는데, 특히 1층 로비에 양측으로 줄지어 선 민흘림 형태의 목조기둥은 대청마루와 같은 시원한 공간감으로 한국의 멋을 드러낸다.
춘추관은 맞배지붕과 사모지붕, 흑색 오지기와로 검박한 전통미를 구현하며 동십자각의 절병통 비례를 참고해 설계됐다. 건물 명칭은 고려 및 조선 시대에 정사 기록을 맡아보던 관아 ‘춘추관’에서 비롯했으며, 고각에 설치한 신문고는 국민의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프레스센터의 상징성을 의미한다. 5m 단차가 나는 경사지를 활용해 1층에는 기자단 사무실과 부속실을, 2층에는 기자회견장을 배치해 기자 출입 동선과 대통령 및 정부 부처 관료의 동선을 분리했다. 천장에 설치된 방패연 모양의 조형물은 반사 및 흡음 등의 음향 기능을 수행한다.
기사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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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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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
대한민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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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
공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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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연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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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연도
1990(춘추관), 1991(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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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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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적
(본관) 8,476m² / (춘추관) 3,398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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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면적
(본관) 4,305m² / (춘추관) 1,200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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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본관) 지하 1층, 지상 2층 / (춘추관) 지하 1층, 지상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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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
유원건설, 선진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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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김정철, 최태용, 이형재, 이종현 외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은 ‘배경으로서의 건축’을 추구하는 정림건축의 초기 디자인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다. 고건축의 비례 체계를 적용한 외관으로 한국식 신고전주의 양식을 보이며 공간의 평면 구성과 인테리어 계획, 자재 및 공법 채택에 이르기까지 ‘전통 건축의 현대화’에 설계의 역점을 맞추었다.
본관은 북악산에 둘러싸인 옛 경복궁 후원 대지에서 남측으로 경복궁과 서울 도심부를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한다. 미묘한 곡선을 이루는 팔작지붕 처마선과 청기와로 마감된 색감은 주변 고궁 및 자연 경관과 조우한다. 배치는 조선 시대 서원(書院)과 같이 중앙에 본채를, 좌우에 별채를 두는 형태로 정부의 집무 및 행사 기능을 충족한다. 별채는 본채보다 낮은 기단 위에 건축되어 내부로 진입할수록 점진적인 상승감과 깊이감을 느끼도록 했다. 안마당에 설치된 현관채는 조형적 기능과 규모가 큰 본채의 위압감을 완화시킨다. 실내 공간 또한 한국 전통 양식에 근접하면서도 당대의 격조 높은 공간을 연출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는데, 특히 1층 로비에 양측으로 줄지어 선 민흘림 형태의 목조기둥은 대청마루와 같은 시원한 공간감으로 한국의 멋을 드러낸다.
춘추관은 맞배지붕과 사모지붕, 흑색 오지기와로 검박한 전통미를 구현하며 동십자각의 절병통 비례를 참고해 설계됐다. 건물 명칭은 고려 및 조선 시대에 정사 기록을 맡아보던 관아 ‘춘추관’에서 비롯했으며, 고각에 설치한 신문고는 국민의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프레스센터의 상징성을 의미한다. 5m 단차가 나는 경사지를 활용해 1층에는 기자단 사무실과 부속실을, 2층에는 기자회견장을 배치해 기자 출입 동선과 대통령 및 정부 부처 관료의 동선을 분리했다. 천장에 설치된 방패연 모양의 조형물은 반사 및 흡음 등의 음향 기능을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