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지구를 위한 정림의 건축

60년의 축적
내일을 향한 실천

2027년은 정림건축이 창립 6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동시에 국제사회가 설정한 2030년 기후목표까지 3년을 남겨둔 시점이기도 합니다. 지난 60년 동안 건축은 사회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 도시와 생활의 다양한 요구를 받아들여 왔습니다. 정림건축 역시 시대의 조건과 조율하고 변화에 대응하며 건축의 역할을 확장해 왔습니다. 어떤 변화는 형태와 기술로 선명하게 나타났으며, 또 다른 변화는 공간의 사용 방식과 성능, 시간이 흐른 뒤 드러나는 효과 속에 서서히 축적되었습니다.

건축은 긴 시간을 다루는 작업입니다. 하나의 건축물이 기획되고 설계되어 지어지기까지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며, 그 영향은 준공 이후의 운영과 변화, 해체에 이르기까지 이어집니다. 따라서 지속가능성을 하나의 기술이나 인증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에너지 사용과 내재탄소, 리노베이션, 자원의 순환과 재사용, 기후 재난에 대응하는 회복탄력성과 장소의 생태적 조건까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건축·건설 부문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37%를 차지합니다. 이는 건축이 기후위기와 밀접하게 연결된 동시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중요한 실천의 장임을 보여줍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변화하는 기후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새로 짓고 남길 것인지,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 에너지와 자원을 어떻게 줄이고 순환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선택이 필요합니다. 정림건축은 이러한 복합적인 과제를 아홉 가지 건축적 실천의 언어로 정리했습니다. 이는 하나의 정답이나 정해진 순서가 아니라, 프로젝트의 조건에 따라 서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과정이자 더 나은 결과로 향하기 위한 좌표입니다.

〈내일의 지구를 위한 정림의 건축〉은 지속가능한 건축을 위해 정림건축이 축적해 온 고민과 실천을 살펴봅니다. 재료와 에너지에 관한 작은 선택에서 도시와 생태계를 아우르는 큰 시스템까지, 기후위기의 한복판에서 건축이 할 수 있는 일을 아홉 가지 방법과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Solution 1
에너지 소비 최소화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 기술과 자연의 공존

친환경 건축은 건물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건물 자체의 에너지 성능을 높이고 효율적인 설비 시스템을 적용하는 한편, 일조와 바람, 열환경 등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설계를 세밀하게 조정합니다. 특히 대규모 전력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는 에너지 절감 기술과 친환경 설계 역량이 건축의 성능을 결정하는 대표적인 시설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인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은 이러한 환경적 책임을 바탕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데이터센터를 목표로 계획되었습니다.

대지의 지형과 기존 숲의 형태를 고려해 건물의 배치와 매스를 구성하고, 부용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냉각에 활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개발 과정에서 자연 훼손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준공 이후 지역의 식생이 다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토착 식물을 중심으로 조경을 구성했습니다. 평면과 입면에는 규격화된 모듈을 적용해 자재의 절단과 폐기를 최소화했으며, 서버동의 형태도 서버 랙의 규격과 운영 방식을 바탕으로 계획해 불필요한 공간과 자재 사용을 줄였습니다.

자연의 에너지를 활용하고 건물에서 발생하는 자원을 다시 순환시키는 기술도 적용했습니다. 네이버가 자체 개발한 냉각 시스템 ‘NAMU’는 외부의 차가운 공기로 서버실의 열을 낮추며, 서버실에서 발생한 폐열은 온수와 난방 에너지로 재사용됩니다. 빗물 역시 회수해 조경용수로 활용합니다. 이처럼 대지의 조건을 읽는 방식부터 배치와 형태, 재료와 운영에 이르기까지 에너지 소비와 환경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략을 건축 전반에 담았습니다. 자연을 극복해야 할 조건이 아닌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바라보며, 에너지 소비가 많은 데이터센터와 환경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Solution 2
저탄소 재료

LG ThinQ Home : 에너지 자립형 주거의 가능성

지속가능한 건축에서 재료는 건물의 탄소 배출과 에너지 성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태양광 패널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반적인 외장재와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LG ThinQ Home은 태양광 기술을 건축의 일부로 통합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에너지를 소비하는 주택에서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주택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프로젝트입니다.

정림건축은 LG전자와 협업해 태양광 모듈을 건물의 입면과 지붕을 구성하는 외장재로 활용할 수 있는 건물일체형 태양광 시스템(BIPV)을 개발했습니다. 기존 건축 자재의 규격과 시공 방식을 고려해 모듈과 설치 디테일을 설계함으로써, 약 880매의 태양광 패널이 건축의 형태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북측 창과 실내 용적을 줄이고, 고성능 단열과 열교 차단, 로이 삼중창호 등을 적용해 건물에서 빠져나가는 에너지를 최소화했습니다.

주택에서 사용하는 냉난방과 조명, 급탕, 환기뿐 아니라 가전제품이 소비하는 에너지까지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시스템도 적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LG ThinQ Home은 에너지 자립률 121.66%를 달성하며 국내 최초로 제로에너지건축물 1등급을 획득했습니다.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하는 플러스 에너지 주택으로서, 친환경 기술을 별도의 설비가 아닌 건축 재료와 디자인의 일부로 구현한 미래 주거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Solution 3
적응적 재사용

삼일빌딩 리노베이션 : 시간의 가치를 잇는 레이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과정에는 많은 자원과 에너지가 필요하며, 상당한 양의 폐기물도 발생합니다. 이에 비해 기존 건축물의 구조와 재료를 활용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적응적 재사용은 건축의 환경 부담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1970년 완공된 삼일빌딩은 국내 고층 오피스 건축의 시작을 알린 건물이자, 건축가 김중업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준공 후 50여 년이 지나며 시설과 성능의 개선이 필요해졌지만,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역사적 가치와 본래의 용도를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업무 공간으로 되살리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리노베이션은 김중업의 설계가 지닌 비례와 형태를 존중하면서, 오늘날의 안전 기준과 업무 환경에 맞게 성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외관을 이루는 I형강과 커튼월은 기존의 디자인과 규격을 바탕으로 새롭게 정비해 건물의 인상을 유지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재료의 변색까지 고려해 마감 방식을 보완했습니다. 내부에는 구조 보강과 설비 개선을 진행하고, 천장을 노출해 업무 공간에 필요한 높이를 확보했습니다. 바닥에는 경량 콘크리트와 재활용 수지를 적용한 이중바닥 시스템을 도입해 설비의 유연성과 공간 활용도를 높였습니다.

과거의 리모델링 과정에서 달라졌던 코어와 저층부도 건물의 원래 구성과 현재의 도시 환경을 함께 고려해 재정비했습니다. 독립된 코어의 형태는 유지하면서 승강기 성능을 개선했고, 청계천과 마주하는 저층부는 유리와 개방적인 공간 구성을 통해 도시와 보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삼일빌딩 리노베이션은 건축물의 외형을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구조와 재료에 새로운 기능을 더해 앞으로의 시간을 이어가도록 한 프로젝트입니다. 건물에 축적된 역사와 자원을 보존하면서도 현재의 요구에 대응하는 적응적 재사용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전일빌딩 245 : 기억의 표상화

기존 건축물을 다시 사용하는 일은 물리적인 자원을 보존하는 동시에, 그 장소에 축적된 사회적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광주 금남로에 자리한 전일빌딩은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지켜본 건물이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며 시설이 노후화되고 주변 도시 환경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역할이 필요해졌습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개관을 계기로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시민문화 공간으로 되살리는 리노베이션이 추진되었습니다.

설계 과정에서는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으면서 현재의 기능을 더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건물의 외벽과 내부에서 발견된 245개의 총탄 흔적은 여러 차례의 전문적인 조사와 검증을 거쳐 보존되었으며, 흔적의 위치와 방향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정비했습니다. 특히 9층과 10층은 건물에 남아 있는 흔적을 직접 마주하며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구성했습니다. 새로운 마감으로 덮기보다 기존 벽체와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건물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기록으로 기능하도록 했습니다.

기존의 사무 공간은 시민문화시설과 콘텐츠 창작 공간, 전시 및 휴게 공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옥상에는 광주의 도심과 무등산을 바라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인 전일마루를 조성해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일빌딩 245는 건물에 남은 기억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활동을 수용하며, 역사적 장소가 현재의 도시와 다시 관계 맺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물리적인 건축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대의 기억까지 이어가는 적응적 재사용의 의미를 보여주는 프로젝트입니다.

Solution 4
지역성 살리기

콩고민주공화국 국립박물관 : 이곳과 지금을 위한 건축

지속가능한 건축은 지역의 환경과 문화를 세심하게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건축 방식에는 기후에 대응하고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온 지역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무상 원조 사업으로 조성된 콩고민주공화국 국립박물관은 국가적 차원에서 처음 건립된 공공 문화시설로, 지역의 정체성과 전통문화, 열대기후의 조건을 건축에 담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습니다.

제한된 전시 면적을 보완하면서 국가 문화시설로서 충분한 공간감을 확보하기 위해 건물 중앙에는 큰 홀과 광장을 두고, 그 둘레를 필로티와 회랑으로 연결했습니다. 그늘진 회랑은 실내외를 이어주는 통로이자 야외 전시와 시민 활동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입면에는 아프리카의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패턴을 적용했으며, 회랑의 지붕에는 긴 천창을 계획해 하나의 빛이 공간을 가로지르도록 했습니다. 이 빛은 다양한 공동체가 하나의 문화 공간에서 만난다는 통합의 의미를 상징합니다.

고온의 기후와 불안정한 전력 공급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기계 설비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계획을 적용했습니다. 높은 천장과 자연 환기가 가능한 창호를 통해 뜨거운 공기가 위로 빠져나가도록 했으며, 이중 지붕과 빛을 반사하는 마감재를 사용해 실내로 전달되는 열을 낮췄습니다. 수공간과 조경은 외부의 열환경을 완화하고, 주차장 지붕의 태양광 패널은 건물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보완합니다. 빗물은 모아 조경용수로 다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외장재에는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벽돌을 활용하고, 현지 작업자와 기술진의 협업을 통해 지역의 여건에 맞는 시공 방식을 구축했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 국립박물관은 익숙한 건축 방식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지역의 기후와 재료, 문화적 상징을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아 그 장소에 필요한 건축을 완성한 프로젝트입니다.

Solution 5
자원의 재활용과 순환

평창동계올림픽 스타디움 : 해체라는 과정이자 결과

평창동계올림픽 스타디움은 대회 기간 동안 필요한 기능을 수행한 뒤, 대부분의 시설을 해체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된 임시 건축입니다. 짧은 행사를 위해 대규모 영구 시설을 남기기보다 건축물의 사용 기간과 이후의 활용 방식을 설계 단계부터 함께 고려했습니다. 관람석과 가설 시설물은 임대 방식으로 설치했으며, 대회가 끝난 뒤 다른 장소와 용도로 이동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스타디움은 기존 지형의 변화를 줄이면서 원활한 관람 동선과 다양한 공연 연출을 수용할 수 있도록 오각형 평면으로 구성했습니다. 다섯 방향에 출입구를 배치해 무대와 객석으로의 접근성을 높였으며, 산과 도로, 하천으로 나뉜 대지는 바깥마당과 안길, 안마당으로 이어지는 공간 체계를 통해 하나로 연결했습니다. 야간에 진행되는 개·폐회식에 맞춰 입면은 조명과 영상의 배경이 되도록 계획했으며, 강한 바람을 견디면서 철거 후 재사용할 수 있는 PVC 메시를 적용했습니다.

대회 이후에는 7층 규모로 운영되었던 본부동의 일부를 남겨 기념관으로 활용하고, 관람석이 있던 경사지는 주변 지형과 어우러지는 자연형 공간으로 정비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스타디움은 건축의 완성을 준공 시점에 한정하지 않고, 설치와 운영, 해체, 재사용으로 이어지는 과정 전체를 하나의 설계로 바라본 프로젝트입니다. 필요한 기간에는 제 역할을 다하고, 이후에는 자원과 장소가 새로운 쓰임을 이어가도록 하며 순환하는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Solution 6
회복탄력성

망상오토캠핑리조트 : 다시 도약할 수 있는 힘

건축에서 회복탄력성은 재해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되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며 다음의 위험에 대비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국내 오토캠핑 문화를 이끌어 온 망상오토캠핑리조트는 2019년 동해안 산불로 숙박시설과 부대시설, 넓은 송림이 소실되면서 장소의 기반을 다시 세워야 했습니다. 정림건축은 마스터플랜 설계를 통해 기존 리조트가 지녀 온 공간적 정체성을 이어가면서도, 자연재해에 보다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계획했습니다.

복원 과정에서는 바다와 숲, 지면 가까이에서 머무는 기존 휴양지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여러 동의 저층형 숙박시설을 해안선을 따라 물결처럼 배치해 모든 객실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으며, 시설의 확장이나 운영 방식의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습니다. 건물의 형태는 조형적인 표현을 앞세우기보다 주변의 소나무와 바다 풍경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단순하고 낮게 계획했습니다.

재료의 선택에는 동해안의 기후와 산불 위험을 반영했습니다. 봄철 강한 바람을 타고 불길이 빠르게 확산되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주요 건물에는 화재에 강한 콘크리트와 라임스톤을 적용했습니다. 지역 업체가 실시설계에 참여하며 복원의 과정과 지역의 일상을 다시 연결한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망상오토캠핑리조트는 사라진 시설을 채우는 데 머물지 않고, 장소의 기억과 풍경을 이어가면서 앞으로의 위험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프로젝트입니다.

Solution 7
지하 도시 개발

강남권 광역복합환승센터 : 도시를 확장하는 또 하나의 기반

도시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지하 공간은 교통과 상업, 공공 기능을 수용하는 새로운 도시 기반으로서 가능성을 갖습니다. 강남권 광역복합환승센터는 영동대로 아래에 철도와 버스 환승시설, 공공·상업 공간을 통합해 지상과 지하의 도시 기능을 새롭게 연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여러 교통수단을 한곳에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지하 공간의 개발을 통해 지상의 혼잡을 줄이고 녹지와 보행 공간을 확장하는 방향을 제안합니다.

프로젝트의 중심축인 ‘라이트워크(Lightwalk)’는 봉은사로와 테헤란로를 연결하며 길고 복잡한 지하 공간에 명확한 방향성을 부여합니다. 보행 동선과 차량 동선을 입체적으로 분리해 이동의 편의성과 안전성을 높였으며, 지상에는 다양한 행사와 일상적인 휴식을 수용하는 공공 녹지인 ‘그린랜드(Greenland)’를 조성했습니다. 도시 인프라는 지하에 담고, 그 위의 공간은 시민에게 돌려줌으로써 고밀도의 강남 도심에 새로운 열린 공간을 마련하는 방식입니다.

깊은 지하 공간의 한계를 줄이기 위해 자연광과 환기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도 계획했습니다. 지상을 가로지르는 ‘라이트빔(Light Beam)’은 태양빛을 하부로 전달해 지하 깊은 곳까지 빛이 닿도록 하며, 이용객의 이동을 이끄는 공간적 기준점으로 작동합니다. 지하수와 토양, 지하 생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해 개발과 보존의 균형도 모색했습니다. 강남권 광역복합환승센터는 지하를 단순히 부족한 공간을 채우는 장소로 보는 대신, 지상의 녹지와 보행 환경을 지지하고 도시의 기능을 확장하는 또 하나의 도시 영역으로 제안합니다.

Solution 8
장소성과 공동체의 강화

부산항 북항 마리나 : 일상의 연결과 경계의 전환

부산항 북항 마리나는 북항 재개발을 통해 새롭게 조성되는 해양문화지구의 중심 시설입니다. 일반적으로 마리나는 선박 이용자를 위한 제한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이 프로젝트는 부산의 바다를 시민의 일상과 연결하는 열린 해양문화공간을 목표로 했습니다. 마리나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담는 동시에, 시민들이 머물고 운동하며 바다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더해 장소의 공공성을 확장했습니다.

건물은 외부 공간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테라스형 매스로 계획했습니다. 층층이 열린 공간을 통해 햇빛을 실내 깊숙이 받아들이고, 부산항의 계류시설과 오페라하우스, 해양문화지구의 풍경을 여러 높이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바다와 맞닿는 호안은 가능한 한 길게 활용해 보행공간과 편의시설, 계류시설의 접점을 넓혔으며, 시민들이 물가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소음과 분진이 발생하는 선박 정비 공간은 일반 이용시설과 분리해 안전하고 쾌적한 동선을 확보했습니다.

상층부에는 부산의 바다와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숙박시설을 배치하고, 어린이 생존수영 교육장과 스킨스쿠버 풀 등 시민을 위한 생활체육시설을 마련했습니다. 원도심을 향한 공간에는 다목적홀을 두어 행사와 지역 활동을 수용하도록 했습니다. 해수열을 활용한 냉난방과 저에너지 설비, 해양 환경을 고려한 계획을 적용했으며, 재해 상황에는 지역사회를 보호하는 대피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부산항 북항 마리나는 도시와 바다 사이의 경계를 낮추고, 해양시설을 시민의 일상과 공동체 활동이 이어지는 장소로 확장한 프로젝트입니다.

대구은행 제2본점 : 지역과 관계 맺기

대한민국 최초의 지방은행으로 출발한 대구은행은 오랜 시간 지역과 함께 성장해 온 기업의 정체성을 제2본점의 공간에 담고자 했습니다. 이에 쾌적한 업무 환경을 마련하는 동시에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방문하고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열린 사옥을 계획했습니다.

건물 저층부에는 갤러리와 카페, 오디토리움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배치하고, 여러 방향에서 진입할 수 있도록 출입구를 열어 주변 도시와의 접점을 넓혔습니다. 문화 공간의 중심인 오디토리움은 현악기의 형태에서 착안한 곡선형 공간으로 구성했으며, 붉은빛을 띠는 부빙가 원목을 사용해 따뜻하고 상징적인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업무 공간에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중정을 두어 직원들이 빛과 외부 환경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백색 파사드는 주변의 촘촘한 도시 경관 속에서 차분한 인상을 형성하는 동시에, 실내로 유입되는 강한 빛을 조절해 쾌적한 업무 환경을 돕습니다. 설계 초기부터 친환경 분야와 협업하며 채광과 에너지 성능을 검토하고, 건물의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계획을 건축 전반에 반영했습니다. 대구은행 제2본점은 업무 공간과 시민 문화 공간을 하나의 건물 안에 결합함으로써, 기업과 지역사회의 관계를 넓히고 일상 속 교류를 만들어가는 사옥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Solution 9
생태적 관계성

국립박물관단지 마스터플랜 : 자연을 닮은 스케일

국립박물관단지 마스터플랜은 여러 박물관을 하나의 문화시설군으로 묶는 동시에, 기존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입니다. 정림건축은 오피스 오유(Office OU)와 함께 ‘세종 뮤지엄 가든스(Sejong Museum Gardens)’를 제안해 국제설계공모에 당선되었습니다. 개별 건축물의 형태를 앞세우기보다 전체 단지를 사람의 눈높이에 맞는 규모로 구성하고, 도시와 자연 사이에서 공간의 밀도와 흐름을 세심하게 조절했습니다.

마스터플랜은 건축과 조경을 분리된 영역으로 보지 않고, 박물관과 정원이 서로 이어지는 하나의 환경으로 계획했습니다. 국립어린이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시설은 회랑을 통해 연결되며, 이 회랑은 전통 건축의 공간 구성에서 착안해 단지의 통일된 인상을 형성합니다. 넓은 부지를 이동하는 방문객에게는 그늘과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건물 사이의 정원과 전시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단지 곳곳에는 지역의 자생식물을 비롯한 토착 생태 요소를 반영해 기존 환경의 특성을 이어가도록 했습니다. 식재는 지표면의 온도를 낮추고 탄소를 흡수하며, 충분한 그늘과 투수 공간은 폭염과 집중호우에 대응하는 기반이 됩니다. 보행과 자전거를 중심으로 이동 체계를 구성하고, 다양한 생물이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사람과 자연의 관계도 확장했습니다. 국립박물관단지 마스터플랜은 정원을 건축의 배경이 아닌 문화적 경험과 생태적 기능을 함께 만드는 중심 공간으로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