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소개 부탁드립니다.
생각공장 신축 프로젝트에서 DP(design principle) 역할을 맡은 18년차 김동관입니다. 창원한마음병원, 워커힐 리버파크,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신안경찰서 등 다양한 규모에서 여러 용도의 건축물을 설계했습니다. 장소성을 담은 건축을 지향합니다. 주변과 관계를 잘 맺는 건물이라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사랑 받으며 그곳에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생각공장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
현상설계공모 때부터 DP로서 프로젝트 디자이너 역할을 했습니다. 매주 클라이언트 협의와 브리핑을 진행했고요.
생각공장 당산의 디자인 요소
지식산업센터라는 유형 특성상 건축가가 디자인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적습니다. 이때 정림건축은 ‘디자인’을 어떠한 관점으로 접근했는지 궁금합니다.
지식산업센터는 다층형 집합건축물로 각각의 실을 분양합니다. 그러니 아파트의 주호처럼 규격화한 실을 오차 없이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 논리에서 설계사무소의 역할은 입주사들이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하고 지역 주민에게 환대 받는 제안을 만드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희는 저층부에 보다 집중했어요. 사무실로 채워진 상층부는 클라이언트가 사업적으로 판단한 면적과 호수에 따르되, 주민과 입주사들이 다 함께 오가는 저층부는 도시와의 관계를 만들고 이벤트가 벌어지고 사람간의 교류가 일어나는 장을 만들자고 생각했죠. 쉽게 말해 저희는 저층부에서 디자인 승부를 보자고 생각한 셈입니다.
그러한 생각이 선큰 광장으로 드러난 건가요?
시작은 클라이언트의 제안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상가의 분양가는 층수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1층 상가의 임대료가 100만원일 때 2층 상가는 50만 원인 식이죠. 그런 이유에서 클라이언트는 1~2층 전체 면적을 상가로 두고 싶다고 말씀하셨고, 이에 저희는 동의하면서 공용 로비를 선큰 광장으로 진입하는 지하 1층에 두자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공용 로비를 지하에 배치한 전례가 없는 지라 계획설계, 실시설계 단계에서 클라이언트의 의구심이 커졌습니다만 이때 저희는 오히려 확신을 갖고 편안하고 쾌적한 지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더 신경 썼던 기억이 납니다.
실은 비화가 하나 있습니다. 건물 배치를 스터디하던 단계의 일인데요. 건물 덩어리들의 규모나 배치 등은 어느 정도 정해진 상태였고, 여기에 설계팀은 ‘도시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들여보자’는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었죠. (윤)나예 님에게 대지에 들어가는 길을 모형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경사로를 만들어 온 거예요. ‘어라, 경사를 두라고 한 적은 없었는데’ 했더니 ‘아, 저는 만드는 줄 알고…. 그런데 이게 더 좋지 않나요? 그 길에 이렇게 경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하면서 이야기가 점차 발전되었어요. 참 우연찮은 일이었죠. 선큰의 가장 최초는 거기서 시작됐습니다.
그랬군요. 지식산업센터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고 싶었던 건가요?
우선은 클라이언트와 정림건축 모두 지식산업센터를 효율성, 가성비로만 판단하던 시대가 지났다는 데에 동의했거든요. 그래서 ‘사옥’처럼 만들고자 했습니다. 개별 입주사들에게 자긍심이 될 만한, 오래 머물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앞서 말했듯 ‘길’이라는 콘셉트도 이 건물이 자아내는 풍경에 사람들이 자연히 이끌리길 바란 목적에서 비롯되었고요. 그에 걸맞은 건축적 이벤트를 유발할 장치로서 선큰 광장이, 그리고 지상층 상가들 앞에 지그재그로 낸 포켓 공간 등이 설계되었던 것입니다.
더불어, 적재적소에 적당한 투자로 전체 퀄리티를 높이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투자란 공용 로비에 마련한 라운지, 지상 1층의 바닥 타일과 외장 디자인 블록 등이라 할 수 있겠어요. 기존 지식산업센터에서는 저렴하게, 최소한으로만 구현했던 요소들에 품격을 찾아준 셈이죠. 듀플렉스 타입 호수도 처음 예상한 개수보다 늘리자고 해 고객의 선택지를 더 만들었습니다. 이건 모델하우스를 짓기 전에 90% 분양 완료를 기록했다고 들었습니다.
도시를 마주하는 태도
입면 디자인에서는 어떤 태도를 취했나요?
일명 “wet & dry”라는 디자인 콘셉트를 취했는데요. 1층부터 4층까지는 디자인 블록이라는 콘크리트 벽돌을 치장쌓기하면서 수평선이 강조되는 디자인으로, 5층부터 시작되는 상층부 업무시설은 컬러 로이 실버유리와 간결한 루버 디자인으로 단순하게 마감했습니다. 이미 번잡한 도심 풍경에 또 다른 얼굴을 내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하 1층은 로비와 상가인 1~2층, 지식산업센터를 지원하는 업무시설인 3~4층은 투명 로이 유리와 다른 루버 간격으로 구분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혹 이곳을 유심히 관찰하셨다면, 기부채납시설인 어린이 도서관 입면에도 동일한 마감재가 사용된 것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도서관이자 복지시설로서 필요한 차폐와 개방성을 각 면에 따라 적절히 채택하면서, 생각공장과 같은 대지에 놓여 연속성을 지닌 건물임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생각공장은 연면적 10만㎡에 가까운 규모인 만큼, 이 당산동 도심에 어떻게 들어서게 할지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고민이 되셨을 듯합니다.
맞습니다. 길 건너 인접한 아파트들과 비슷한 높이의 15층 건물이고, 휴먼 스케일에 비하면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압도될 만한 규모니까요. 설계에 참고했던 레퍼런스들 가운데 용산 아모레 퍼시픽 본사 사옥이 있었는데, 그와 같이 당산동 일대를 산책하면서 언뜻언뜻 비치는 정도로 눈에 띄었으면 했습니다. 입면 디자인에서 말씀드렸듯 개성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깨끗한 얼굴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요.
부지 외곽 가까이에 건물들을 두어 채광이나 환기가 원활하도록 했고, 건물 중간중간 보이드를 냈어요. 건물을 뚫어놓은 듯한 이 빈 공간들 사이로 우리의 시야도 막힘없이 가로질러 나아갑니다. 어디에서 관찰하느냐에 따라 보이드의 크기도, 당산동이 바라다보이는 장면도 다 달라지죠. 더불어 보이드가 생겨난 자리마다 외부 테라스 공간까지 함께 조성해낼 수 있었고요. 도시와 건축에서 일어나는 시각적인 흐름과 동선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이 유도하는, ‘메가 스케일의 건물로서 지녀야 할 자세란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며 고민했던 설계였습니다.
현상설계 당선안과 다르게 구현된 점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대지를 가로지르는 길은 생각공장 프로젝트의 시작이자 끝으로서 일관되게 유지되었습니다만, 지하 1층에 공용 로비를 두며 길과 로비가 만나는 교차점이 생겼지요. 엘리베이터 코어와 중간설계가 변경이 됐고요. 대지를 관통하는 선큰이란 개념은 약해졌지만 건축물의 기능성과 로비 인지성은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팀으로 설계하기
DP로서 팀원과의 소통을 할 때 신경 썼던 점이 궁금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한 태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는 매주 수요일 판교에서 클라이언트와 주간회의가 있었는데요. 사무실로 복귀하는 버스 안에서 저는 그날 회의에 나왔던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계획안에 반영해,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팀원들과 공유하려 했습니다. 만일 제가 사무실에 도착하고서 일을 시작하면 팀원들은 제 손만 바라보며 시간을 허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매사에 제 역할을 신속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팀원들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그런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임했고요. 그 덕분인지 건축 심의, 허가 등 행정절차도 막힘 없이 술술 진행됐습니다. 보통 건축 심의 때 지적을 많이 받는데요, 저희는 “저대로만 지어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뿌듯했죠.
마지막으로 소회를 들려주세요.
2018년 추웠던 12월, 팀원들과 첫 현장답사 때 보았던 높은 담장과 적막했던 대지가 이제는 분주한 입주자들로 새로운 활기를 띠고 있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프로젝트는 이 장소에 들어서는 대규모 건축물이 가져야 할 자세와 주변 주거시설에 필요한 것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저희는 도시의 길을 대지로 끌어들여 주변 도시와 이웃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그렸죠. 일단 그 뜻이 성공적으로 구현된 만큼 앞으로의 사용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생각공장이 도시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공간이자 길이 되길 바랍니다.
한편 3만 평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아이디어 제안부터 준공까지 잘 마무리 할 수 있어 기쁩니다. 사실 정림건축 같은 대형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개인이 이렇게 현상설계공모부터 준공까지 경험할 기회가 드뭅니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프로젝트를 위해 정림건축 내부적으로도 지원해준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적은 인원으로 시작해 클라이언트 TF팀과의 주간회의를 일 년이나 이어가면서 양측이 만족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함께 해준 우리 팀원들이 자랑스럽고 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