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산업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했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현장 중심의 생산 방식은 고령화된 노동력, 숙련공의 실종, 끊이지 않는 안전사고, 그리고 높아진 공사비, 짧아진 공기, AI를 통한 기술력의 발전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더 이상 ‘시공하는(Building)’ 방식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시점, ‘제작하는(Manufacturing)’ 건축인 OSC(Off Site Construction) 또는 모듈러 공법이 다음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0일 열린 ‘뉴테크놀로지 세미나(Newtech Knowledge Seminar)’에서 설계, 시공, 제작을 아우르는 전문가들이 김정철홀에 모여 한국 모듈러 건축의 현주소와 미래를 진단했습니다. 이날 다루었던 내용들은 단순한 공법의 소개를 넘어, 자동차를 조립하듯 집을 생산하는 ‘제조업으로서의 건설’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글 & 자료. 안성우 건축가 (정림건축 뉴테크SU 리더)
편집. 정림건축 통합마케팅SU 브랜드팀
01
건설업과
제조업 사이에서
1-1. 글로벌 스탠다드와 한국의 간극: 56층 럭셔리 vs 13층 임대주택
세계 시장에서 모듈러 건축은 이미 주류로 진입했습니다. 영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고층화에집중하여 이미 44층(텐 디그리, 크로이든) 규모의 모듈러 빌딩을 완성했습니다. 싱가포르의 ‘에비뉴 사우스 레지던스(Avenue South Residence)’는 무려 56층 규모로, 50평형대 이상의 대형 평형과 전용 엘리베이터를 갖춘 최고급 주거 상품으로 시공되었습니다. 미국 역시 인건비 상승과 주택난 해결을 위해 전체 건설 시장의 약 6~7%를 모듈러가 차지하며, 일본은 신축 주택의 15%를 모듈러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시장은 전체 건설업 대비 0.2% 수준의 점유율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인식의 차이’입니다. 해외는 고급 호텔과 럭셔리 주거로 모듈러를 시작해 품질에 대한 신뢰를 쌓고 대중화한 반면, 한국은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에만 초점을 맞춰 최저가 주택과 군부대 막사 및 학교 교실 증축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대중에게는 ‘컨테이너 박스’ 혹은 ‘저렴한 조립식 주택’이라는 부정적 낙인이 찍혀버렸습니다. 국내 최고층 기록인 용인 영덕 행복주택(13층)이 성공적으로 준공되었음에도,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기술적 입증을 넘어 ‘살고 싶은 집’으로서의 상품성 확보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1-2. 기술적 팩트 체크: 내화, 소음, 그리고 안전에 대한 오해
모듈러 건축에 대해서는 구조적 안전성과 거주 성능에 대한 의구심이 있지만, 이러한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 내화 성능의 극복
13층을 초과하는 고층 건물은 법적으로 3시간 내화 성능을 확보해야 합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한 용인 영덕 프로젝트에서는 기존의 뿜칠 방식이 아닌 ‘내화 석고보드’ 적층 공법을 통해 철골 모듈러의 화재 안전성을 입증했습니다.
- 층간 소음과 진동
철골 구조 특성상 울림이 심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바닥 충격음 테스트에서 중량 충격음 3등급, 경량 1등급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아파트 수준과 대동소이하거나 오히려 우수한 수치입니다. 또한, 공장에서 단열재와 외장 마감을 정밀 시공하는 외단열 공법을 적용해 결로와 단열 성능에서도 기존 습식 공법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었고, 기밀성 또한 훨씬 우수합니다.
- 이동과 조립의 정밀도
타일과 가구, 심지어 도배까지 공장에서 100% 마감된 상태로 현장에 운송되지만, 무진동 차량 운송 기술과 건식 접합 기술의 발전으로 크랙이나 파손 이슈를 해결했습니다.
1-3.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자동화와 경제성의 딜레마
모듈러 건축이 가진 공기 단축(기존 대비 30~50%)과 탄소 배출 저감(40~50%) 효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여전히 “기존 공법보다 비싸다”는 장벽에 부딪힙니다. 여기에는 한국 특유의 기형적인 주택 구조가 한몫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벽식 구조 아파트(Wall Type RC)’가 보편화되어 있어, 이 초저가 공법과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모듈러가 상대적으로 비싸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규모의 경제’입니다. 자동차 공장 같은 자동화 라인을 구축하려면 수백억 원의 투자가 필요한데, 연간 발주 물량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설비를 투자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발주처는 단가가 낮아져야 발주를 늘리겠다고 하고, 제작사는 물량이 늘어야 투자를 통해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맞서는 논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과감한 공공 발주 쿼터제나, 민간 시장 활성화를 위한 용적률·건폐율 인센티브, 그리고 모듈러를 하나의 ‘제품’으로 인정하여 ‘시공’에 적용되는 분리 발주 등의 규제를 완화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합니다. 다행히도 최근 새롭게 모듈러 특별법 입안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1-4. 소재의 다변화와 하이브리드 전략: Steel vs. PC
국내 모듈러 시장은 철골 방식이 주도하고 있지만, 콘크리트 기반의 PC(Precast Concrete) 모듈러 역시 진화하고 있습니다. PC 모듈러는 무겁다는 단점이 있지만, 내구성과 차음성이 뛰어납니다. 최근 경량 PC 기술 개발을 통해 운송과 양중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향후 시장이 철골과 PC의 대결 구도가 아닌, 건물의 용도와 높이에 따라 두 공법을 섞어 쓰는 ‘하이브리드(Hybrid)’ 방식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예를 들어 저층부와 코어(Core)는 PC나 RC로 단단하게 잡고, 상층부 주거 유닛은 경량 철골 모듈로 빠르게 적층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구조적 안정성과 시공 속도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1-5. 건축가의 역할 변화: 설계자가 아닌 ‘프로덕트 코디네이터’
모듈러 시대, 건축 설계의 프로세스는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기존에는 건축가가 디자인을 완성하면 시공사가 이를 구현하는 방식이었다면, 모듈러는 기획 단계부터 제조사, 시공사, 설계사가 ‘원팀(One Team)’이 되어야 합니다.
운송 가능한 모듈의 크기(운송 폭, 높이 제한), 크레인의 양중 능력(모듈당 20~25톤), 공장 생산 라인의 특성을 고려한 설계(DFMA: Design for Manufacturing and Assembly)가 선행되지 않으면 프로젝트의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집은 표준화된 플랫폼 위에서 옵션을 선택하는 ‘상품(Product)’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테슬라와 LG전자가 주택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미래의 건축가는 단순한 도면 작성자를 넘어, 다양한 기술적 요소와 제조 공정을 조율하고, 표준화된 모듈 안에서 최상의 공간 경험을 이끌어내는 ‘프로덕트 코디네이터’로서의 역량이 요구됩니다.
결론: 제조업으로의 진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
건설업의 제조업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입니다. 0.2%라는 초라한 시장 점유율은 역설적으로 한국 모듈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해외처럼 50층 랜드마크 모듈러 빌딩이 한국에도 들어서야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것”이라는 예상처럼, 이제는 실험적인 시도를 넘어 과감한 고층화 프로젝트와 럭셔리 상품 개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 기업의 과감한 자동화 투자, 그리고 건축가들의 창의적인 디자인이 맞물릴 때, 한국의 건설 산업은 노동 집약적 산업에서 첨단 스마트 제조업으로 성공적인 체질 개선을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

02
OSC로의 변화에
대응하는 건축가
2-1. 모듈러 건축의 정의와 오해: ‘저렴한 조립식’이 아닌 ‘고비용 고품질’의 기술 집약체
우리는 지금 모든 건축 기술의 총집약체인 ‘모듈러 건축’의 시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흔히 모듈러 건축을 단순히 공사비를 아끼기 위한 ‘저렴한 조립식 건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듈러의 본질을 간과한 것입니다. 모듈러 건축은 친환경 기술과 BIM이 결합된 첨단 공법입니다.
건축물의 외벽이 갖추어야 할 필수 기능인 단열, 방수, 기밀성 등을 통제된 공장 환경에서 완벽하게 조립해서 나오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나 실제로나 현장 시공 대비 하자가 적은 ‘무결점 건물’을 지향합니다. 품질이 더 좋기 때문에, 모듈러 건축물은 더 고급입니다. 자동차처럼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면 고급이면서도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공급이 가능합니다.
공사 기간의 획기적인 단축, 고성능 자재의 적용, 대량 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 그리고 무엇보다 건설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안전사고 저감이라는 큰 혜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투자비용과 기술 개발 비용으로 인해 현재로서는 기존 건축물보다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싱가포르처럼 대다수의 주거 건축물이 모듈러로 시공되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2-2. 건설의 제조업화: OSC의 실현과 테슬라(Tesla)의 교훈
모듈러 건축의 성공은 곧 OSC(Off-Site Construction, 탈현장 건설)의 활성화에 달려 있습니다.OSC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건설 산업 구조 자체가 ‘제조업화’ 되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방식뿐만 아니라, 금융 조달(PF) 구조부터 인력 운용 방식까지 모든 것이 달라짐을 의미합니다.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꾼 테슬라는 기존 자동차 시장의 강력한 기득권자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후발주자로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그들은 ‘저렴한 전기차’로 승부하지 않았습니다.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가격이 비쌈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디자인, 그리고 혁신적인 사용자 경험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모듈러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학교나 군부대 시설 등 관 주도의 수요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계를 넘어서려면, 민간 소비자들이 기꺼이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상품’이 되어야 합니다. 테슬라처럼 기술력이 뒷받침된 훌륭한 디자인이 필수적입니다. 소비자의 인식을 전환하고, 제도적으로 불리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결국 시장을 뚫는 창은 ‘압도적인 상품성’입니다.
2-3. 국내 경쟁사들의 동향과 디자이너의 딜레마
현재 국내 대형 설계사들은 이미 모듈러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삼우는 ‘Moffice(모듈러 오피스)’를 론칭하여 삼성의 각종 현장 사무소에 모듈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포스코A&C는 그룹사의 철강 기술과 건축을 결합하여 오래전부터 모듈러 주택을 선보였고, 간삼 역시 오래전부터 주택 모델을 제작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희림이 ‘미노(MINO, Modular Innovation)’를 출시했습니다. 희림의 경우 우리와 가장 비슷한 사업구조 및 건축주 층을 가지고 있는데 모듈러 사업에 새롭게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시행사업의 공동투자자와 협력하여 리조트 단지를 모듈러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론칭하고, 해외 진출 및 자사 사옥신축에도 적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들 선도 기업들조차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형사들이 다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감 섞인 목소리가 나오지만, 디자이너로서 단순히 모듈러 프로세스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를 찾기 어렵습니다. 자동차 회사의 수만 명 직원 중 실제 자동차의 외형과 컨셉을 결정하는 디자이너가 극소수이듯, 제조업화된 건설 환경에서 단순 설계 인력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직접 제작(Construction/Manufacturing)을 겸하지 않는 순수 설계 사무소가 모듈러 시장에서 어떻게 수익을 내고 생존할 것인가는 우리 정림건축을 포함한 모든 설계사무소의 고민거리입니다.
2-4. DfMA의 세계: 설계의 패러다임이 바뀝니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전장에서 디자이너는 어떤 무기를 갖춰야 할까요?
핵심은 DfMA(Design for Manufacture and Assembly, 제조 및 조립을 고려한 설계)로의 전환입니다. 우리가 기존에 수행하던 건축 설계가 얼마나 ‘대충’ 이루어졌는지는 BIM 설계를 수행해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BIM으로 디자인하지 않고 2D로 도면을 납품한 뒤, 현장 작업자의 기술력과 융통성에 의존하던 방식은 모듈러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모듈러 설계는 볼트 하나, 배관의 조그만 오차까지 미리 계산해야 하는 완전히 다른 프로세스를 거칩니다.
- 접합부(Joint) 디테일의 기술적 해결
모듈과 모듈이 만나는 접합부는 모듈러 건축의 아킬레스건입니다. 완벽한 단열, 방수, 기밀 성능을 확보하면서도 현장 조립이 간편한 디테일을 풀어내야 합니다.


- 고성능 거주 환경 구현
층간 소음 해소를 위한 바닥 구조, 층상 배관을 고려한 모듈형 화장실(POD) 등의 설비 통합 기술이 필수적입니다.

- 공장 제작률의 극대화
모듈러 성공의 핵심 요소는 현장 작업을 얼마나 줄이고 공장 작업을 늘리느냐에 있습니다. 현재는 외장재 패널의 일부를 현장에서 후공정으로 부착하는 경우가 많아 완전한 공장 제작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디자이너는 외장 마감까지 공장에서 미리 부착해 현장에서는 조립만 할 수 있는 혁신적인 디테일을 고안해야 합니다.
2-5. 미래의 건축: ‘선택형 주문 주택’과 건축가의 역할 변화
장기적으로 건축은 제조업과 통합되어 갈 것입니다. 자동차를 주문하면 집 앞으로 배송되듯, 주택 또한 소비자가 색상, 인테리어 사양, 외장재 옵션을 선택하면 공장에서 제작되어 배달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건설업과 제조업의 경계가 희미해집니다. 이러한 미래에 대비하여 건축가는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기법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모듈러의 단점인 획일적인 디자인을 극복하기 위해, 최적의 외장 패널라이징 기술을 통해 경제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심미적으로 수려한 디자인을 구현해야 합니다. 모듈러의 표준화를 제시하되, 그 안에서 무한한 가변성을 갖추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건축가의 능력입니다.
결론적으로, 모듈러 시대의 건축가는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건축가는 최적의 재료를 발견하고, DfMA 기반의 공법과 디테일을 개발하며, 시장을 선도할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R&D 전문가’이자, 생산자(공장/시공사)와 소비자(건축주) 사이에서 시장의 활성화를 조율하고 지휘하는 ‘마에스트로(Maestro)’가 되어야 합니다.
정림건축이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길은 바로 이 ‘지휘자’로서의 기술적, 미적 역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데에 있습니다. 싱가포르 등 선진 해외 사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우리만의 독보적인 기술적 디테일과 디자인 솔루션을 갖출 때, 비로소 활짝 펼쳐질 모듈러 시장에서 강자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03
단순반복을 넘어선
모듈러 입면 디자인
모듈러 건축은 그동안 생산성 향상과 공기 단축이라는 명확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조로운 조립식 건물’ 혹은 ‘저렴한 임시 거처’라는 오해와 편견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반복적인 그리드와 제한된 디테일로 인해 발생하는 획일적인 외관은 모듈러 건축의 시장 확장을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이었습니다. 이제 모듈러 건축은 공장 제작의 정밀도와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의 잠재력을 결합한 새로운 미학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3-1. 프로세스의 전환: ‘덧붙임’에서 ‘통합’으로
일반 건축의 입면이 골조 완성 후 외장을 덧붙이는 방식이라면, 모듈러는 구조와 내외장이 동시에 제작되는 통합 시스템입니다. 이는 일체형 구조, 모듈의 규격, 운송, 접합의 제약이 디자인의 시작 단계부터 깊이 고려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공적인 모듈러 입면을 위해서는 초기 단계부터 구조 그리드, 창호 인터페이스, 외피 패널라이징을 일괄 검토하는 ‘통합 설계’가 필수적입니다. 코너와 모듈 접합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 그리고 공장에서 사전 조립 가능한 방수 및 기밀 디테일의 표준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3-2. 제약조건을 기회로 치환하는 전략
모듈러 디자인의 핵심은 ‘제약의 극복’이 아니라 ‘제약의 활용’에 있습니다.
- 첫째, 그리드 종속성의 탈피입니다.
유닛 적층으로 인해 발생하는 필연적인 반복성은 베이(Bay) 리듬을 세분화하거나 ‘Mirror’, ‘Shift’, ‘Encroach’와 같은 변형 액션을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몰드 내에서도 파라메트릭 설계를 통해 패턴의 깊이와 질감을 달리하는 디지털 제작 방식은 특별한 비용증가 없이 시각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핵심기술입니다.
- 둘째, 정밀 제조의 이점 활용입니다.
현장 시공보다 월등히 높은 공장 제작의 정밀도를 활용하여 3D 형상이나 미세 디테일을 구현하고, 표준 패널 사이에 국소적인 커스텀 인서트를 혼합함으로써 비용 효율과 심미적 완성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습니다.
3-3. 운송과 시공을 고려한 디자인
입면 디자인은 도로라는 물리적 인프라에 종속됩니다. 통상적으로 폭 3.4m, 높이 3.4m, 길이 12m 이내의 운송 표준 사이즈를 고려해야 하며, 국토교통부의 제한차량 운행허가 시스템(https://ospermit.go.kr/Main)을 통해 주요 운송 도로의 허용 기준(폭, 높이, 중량 등)을 사전에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디자인도 현장에 온전하게 도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운송 중 발생하는 진동과 충격, 현장 적층 과정에서의 파손을 방지하기 위한 디자인 전략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 하부 이격
모듈 하부와 외장재 최저점 사이에는 최소 100mm 이상의 이격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는 운송 및 양중 시 발생할 수 있는 모서리 파손을 방지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합니다.
- 돌출부의 제어
입면의 깊이감을 주는 루버나 차양판 등은 도로별로 확인한 운송제한 폭을 초과하지 않도록 설계하거나, 초과 시 현장 조립(Knock-down)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 저진동 운송과 보양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저진동 차량 운송을 전제로 하거나, 모듈의 무게중심과 리프팅 포인트를 고려한 외장재 분할 계획이 수립되어야 합니다.
3-4. 접합부(Joint) 디자인: 드러낼 것인가, 숨길 것인가
모듈과 모듈이 만나는 접합부는 모듈러 건축의 가장 큰 숙제이자 특징입니다. 구조 체결 방식(실내/실외)에 따라 입면 디자인이 달라져야 합니다.
- Grid 전략 (정렬과 강조)
모듈러의 구조적 질서를 그대로 드러내어 접합부를 디자인 요소로 승화시킵니다. 조인트를 정직하게 노출하고 정렬함으로써 명확한 리듬감을 부여합니다. 이 방식은 시공이 단순하고 비용 효율이 높습니다.
- Staggered 전략 (분산과 은폐)
입면상 모듈의 위치를 엇갈리게 배치하거나 비규격 패턴을 반복하여 시선을 분산시킵니다. ‘제어된 불규칙성’을 통해 접합부의 존재감을 희석시키고 역동성을 부여합니다. 단, 코킹이 아니라 오픈조인트(10~15mm) 시공방식 등을 통해 시공 오차를 흡수할 수 있는 디테일이 필요합니다.
파사드는 단순한 건물 외피가 아니라 방수, 방습, 단열, 기밀, 채광, 환기, 화재안전, BIPV 등을 통합하여 건물의 에너지 성능 및 여타 모든 기능을 책임지는 시스템이자,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정체성입니다. 모듈러 파사드는 여기에 더해 규격화(Standardization)와 맞춤화(Customization) 사이의 최적 균형점을 찾아내고, 운송과 조립이라는 공업화 건축의 특성을 디자인 언어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모듈러 건축을 ‘임시 건물’의 오명에서 벗어나게 하고, 미래 건축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모듈러를 통해 더 빠르고, 더 정밀하며, 더 아름다운 건축을 디자인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