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변화의 중심을 꿈꾸며, 이명진님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를 쓴 토마스 L. 프리드만은 2009년 COEX에서 열린 제4차 기후변화협약대책 WEEK의 연계 행사인 ‘그린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한국기업과 각계각층의 참여를 역설했는데, 질의응답 시간 중 중국 매체 기자의 질문이 매서웠습니다. “유럽과 미국은 산업혁명을 거쳐 모든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지구환경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개발도상국은 이제 개발을 시작해야 합니다. 당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결국 모든 발전을 차지한 후 뒤따라오는 국가를 견제하기 위함이 아닌가요?” 수백 명의 포럼 참여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프리드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한국은 전화기를 발명한 나라가 아니지만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은 삼성 스마트 폰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지금 환경 정책과 산업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오히려 안심입니다. 환경은 아직 주요 정책과 산업이 아니지만 변화는 시작되었고 방향은 정해졌으며 누가 먼저 시작하고 성취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라는 인상적인 답변을 하였습니다.
글. 이명진 정림건축 대표이사
게재. 한국건축가협회지「건축가」통권 287호 (복간호 특집)

문화의 다양성을 주목하는 다원주의 시대
건축문화 주권을 위한 우리의 역할

‘K-드라마’를 비롯하여 한국의 영화, 음악, 음식, 문학과 뮤지컬은 특정 지역과 시기를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각종 수상 소식과 현지 관심을 한아름 받아오고 있습니다. 세계적 경향과 흐름에서 중심을 차지한 적이 없었던 한국의 콘텐츠와 문화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1990년대 대중문화의 강력한 내적 혁신과 변화는 90년대 말 국민정부로부터 시작된 문화콘텐츠진흥 정책과 만나 시너지를 이루며 일본을 거쳐 동남아시아, 미국, 유럽으로 서서히 퍼져갔습니다. 이후로 30년 간 수많은 아티스트와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그 위상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건축으로 가보겠습니다. 건축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프리츠커 상은 첫 회 미국의 필립 존슨 수상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단게 겐조(일본), 프랭크 게리(미국), 노먼 포스터(영국) 등 건축 선진국의 스타 건축가들의 경연장이었습니다. 그러나 2016년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의 수상으로 보다 다양한 국가의 건축가들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스페인의 라파엘 아란다, 2021년 프랑스의 라카통 앤 바살 스튜디오, 2022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디에베도 프랑시스 케레, 2025 중국의 리우 지아쿤까지. 서양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변방에서 지역성을 살리고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건축가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문화와 기술, 건축이 한방향성을 가지고 그 중심과 주류에서 파생되어 발전해 나가던 세계는 이제 각 지역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며 공존을 추구하는 다원주의적 경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 건축의
흐름과 현재


“근대화 과정은 유감스럽게도 한국인의 자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자생적 변화라기보다는 급변했던 한국 정세에 휩쓸린 타율적 변화였다. (…) 이 과정에서 전통사회가 붕괴되면서 문화 주역의 몰락과 대체, 고유문화의 말살과 왜곡, 다국적 외래문화의 범람 등의 현상이 일어났고, 그 결과 자생적, 능동적 문화 ‘수용’보다는 일방적, 피동적 문화 ‘접변’이 발생하였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환경문화」를 시작하며, <SPACE> 251호(1988년 7월호)

한국 현대건축의 성장은 국가의 역사적 경험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은 자율적인 근대화를 이루어야 할 시기에 일제강점기와 전쟁, 분단이라는 깊은 상처를 겪었습니다. 이후 산업화에 따른 경제 성장과 도시화, 민주화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고, 건축 역시 고속 성장에 대응하며 전례 없는 양적팽창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한국 건축은 두 가지 상반된 요구를 동시에 마주합니다. 하나는 도시 인프라와 산업 설비, 폭증하는 주거 수요에 즉각적으로 대규모 물리적인 대응을 벌인 것, 다른 하나는 세계 건축의 흐름—특히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에 속한 채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지켜나가는 일이었습니다. 한국 건축은 기능성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장되면서도 장소성과 문화성, 지역의 맥락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하는 고민을 놓지 않았습니다.

김중업, 김수근, 김정철, 나상진, 김종성을 비롯한 1세대 건축가들은 한국 전통의 공간 개념과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통해 한국현대건축의 정체성을 구축하려 했습니다. 동시에 1966년 종합민족문화센터 및 종합박물관 현상설계와 1967년 부여박물관 왜색 논란으로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 양식이 어떤 것인가를 두고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한국성의 논의가 촉발됩니다. 오늘날 그 유산은 다양한 방식으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1990년 4.3그룹은 문화로서의 건축과 그 토론의 장을 만들기 위한 공부 모임으로 출발해 한국적 민주주의, 한국적 건축과 전통 논의에서 벗어나 시대에 맞는 모더니즘과 한국성을 탐구했습니다. 이런 건축 운동은 건축 담론을 생산해 논쟁을 만들었고, 기존의 관점과 가치를 검증했으며, 한국 건축 제도의 개선과 교육시스템의 변화까지 이끌어냈습니다.

88올림픽을 기점으로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와 인터넷 기술의 발달, 개방적 문화가 형성되며 해외 유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2000년대 초부터 한국에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한국민의 이슈를 벗어던지고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건축 작품과 담론 형성, 교육을 시작합니다. 일부 건축가들은 해외 협업과 교류를 통해 국내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대형설계사무소는 이 시점에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진출을 시도하며 아시아와 중동, 중남미 등으로 진출합니다. 2010년 이후부터 젊은 건축가들이 지역 사회, 자연 환경, 공공성의 회복을 주요 가치로 삼아 한국 특유의 감성과 맥락을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도시뿐 아니라 지방 곳곳에서 공공건축, 민간 상업건축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전통적인 건축 설계 영역을 넘어 인테리어, 파빌리온, 설치(인스톨레이션), 브랜딩, AI 및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의 영역까지 그 활동 방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국내 담론의 현장에서 왕성하게 발언하고, 국제 저널과 해외 건축 어워드에서 주목받으며 ‘K-Architecture’라는 용어가 하나의 설계 철학, 문화적 태도로 자리잡아가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강점기와 자주독립, 독재와 민주화, 성장과 분배, 전통과 현대의 갈등을 겪지 않은 세대가 출현하며 한국은 비로소 문화적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이 시대와 우리 사회의 문제 그리고 가능성에 스스로 집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각과 자유를 통한 자생적 변화는 분명 우리의 건축에도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최근 해외 건축가의
국내 진출을 바라보며

현재 한국 건축계에서 대두되는 화두 중 하나는 해외 건축가의 한국 진출일 것입니다. “K”로 시작하는 모든 문화 장르가 세계를 휩쓸고, 한국의 미래 첨단 산업이 세계를 이끈다는 기사가 홍수를 이루고 있을 때 건축 분야는 상대적 박탈감을 겪고 있습니다. 노들 글로벌 예술섬 프로젝트 설계 공모에는 토마스 헤더윅(영국)이 당선되었고, 서리풀수장고는 헤르조그 앤 드뫼론(스위스)이, 충남아트센터는 3XN(덴마크)이 진행합니다. 삼표 부지 글로벌 업무지구는 SOM(미국)이 밑그림을 그리며, 삼성동 GBC 프로젝트에는 노먼 포스터(영국)가, 성수동 크래프톤 본사 프로젝트는 데이비드 치퍼필드(영국)가 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공공 지명현상설계는 물론, 도시건축디자인 혁신 사업 등 공공정책 프로젝트뿐 아니라 민간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도 해외 건축가가 초청되고 있습니다.

최근 토마스 헤더윅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감독으로 선정되었고 지자체 명예 자문 건축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정림건축도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어서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와 홍익대학교 캠퍼스 개발 같은 초기 대형 프로젝트에서부터 소규모 민간 오피스 및 상업 시설에 이르기까지 해외 건축가들과 협업 중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주처의 해외 건축가 선호 및 협력 요구는 강해질 것입니다.

해외 건축가들이 근래 부쩍 한국에 진출할 수 있던 이유는 뭘까요? 신축과 대형 개발이 드문 유럽 건축설계 시장의 특성상 자국 내 활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이들의 중국 진출이 가속화되었습니다. 이후 급격히 축소된 중국 시장의 영향과 미국 시장의 정체는 이들이 중동과 타 아시아 지역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였습니다. 한편 한국은 해외 건축가를 통해 도시 경쟁력을 키우려는 지자체의 정책이 공격적으로 펼쳐졌으며, 민간 영역에서도 일부 소비 고객층의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국내 개발사와 건설사 등이 민간 부동산 사업에 스타 건축가를 끌어들였습니다. 공공과 민간, 대규모에서 소규모까지 모든 영역에서 해외 건축가를 선호했고 이에 즉각적인 화답이 이어지며 한국은 해외 건축가들의 매력적인 시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비단 새로운 현상만은 아닙니다. 뮤지엄 산이나 DDP의 경우에서도 보듯 과거에도 해외 건축가의 단독 작업 또는 국내사와의 협업을 통한 국내 진출이 간헐적으로 있어 왔습니다. 양질의 건축물이 만들어지면서 도시의 매력과 경쟁력이 높아지고, 국내 건축계의 디자인과 기술에 대한 지평이 넓어지며 교류도 확대되는 등 순 작용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현재의 문제는 단기간 가시적인 성과에 치중한 정책들이 장기간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야 할 도시의 성장과 문화의 자생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의 확산 범위 및 속도가 공공은 물론 민간까지 넓고 빠르게 진행되며 국내시장에서 조차 생존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국내 건축사무소의 생존에 대한 고민일 것입니다.

최근 이를 인지한 건축계 전반에서도 문제에 관심을 갖고 담론을 형성 중입니다. 건축사협회와 건축가협회 등도 목소리를 모아 세미나와 포럼을 주최해 회원과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6월 말 〈K-건축문화 종합지원계획〉을 발표해 국내 건축가들의 역량 향상 및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표명했습니다. 국제도시공간디자인상 신설, 신진 및 혁신건축가 발굴 및 지원, 건축가 존중 문화 정착을 위한 행정적 지원을 강화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보임은 물론, 건축물이라는 하드웨어에만 집중해 왔던 정책을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보완하는 계획으로 국내 건축가에게 기회를 부여하며 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변화의 흐름에 선 지금
건축계 우리의 역할

  • 건강한 경쟁과 자국 건축설계 육성을 위한 정책 마련
    이미 각계에서 많은 분들이 논의했듯 건강한 경쟁을 위해 기회를 공정하게 부여하며 자국의 건축설계 산업을 육성할 지속적인 지원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최근 〈K-건축문화 종합지원계획〉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지자체 행정과 건축계 사이의 열린 소통 과정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정책들이 나오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오랫동안 건축계 안에서는 정책 관련 이야기에 자조적인 반응이 대다수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들어진 이러한 정책들이 더 많은 이해관계자와 정기적인 소통을 바탕으로 지속적이고도 본질적인 육성 계획으로 발전하고 또 전국적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바쁜 현업 중에도 정책 수립 과정에 기꺼이 노력을 기울이는 분들께 많은 격려와 관심이 필요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 또한 중요합니다.
  • 국내 설계 대가 정상화
    고객과 사회의 국내 건축설계에 대한 인식 개선, 인허가 절차 및 행정 합리화, 건전성을 저해하는 기존관습 자정 노력 등 현업에서 부딪히는 절박한 숙제들이 산적해 있음도 사실입니다. 동시에 단순 문제 인식과 평가보다 해결에 초점을 맞추어 한 발짝씩 나아갈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 그리고 교류의 확대
    어려운 상황이지만 몇몇 선도적인 건축가와 조직은 그간의 노력으로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노력과 성과가 건축계에서 조명되고, 또 공유될 자리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해외 설계사의 국내 진출은 속도를 조절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시장은 더욱 개방될 것입니다. 그러니 안으로는 자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밖으로는 진취적 도전을 함께 이루어 나갈 적극적인 지원 정책과 기업 정신이 필요할 때입니다. 또한 해외 건축가들이 국내 시장에서 활동하고자 협업할 시 단기적인 비즈니스나 프로젝트의 성과를 위함 이기보다 디자인과 기술의 교류, 인적 자원의 성장 및 장기적인 협업을 도모하는 형태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한발 나아가 문화교류 활동에도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UIA를 비롯한 AIA, ARCASIA,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베니스비엔날레 등 국내외 각지에서 주최되는 글로벌 건축 문화행사뿐만 아니라 각 단체와 협회에서 새로이 추진 및 신설 중인 각종 행사를 통해 세계의 건축가, 단체들과 건강한 교류와 연대를 이루며 글로벌 담론에서도 한국의 건축이 존재감과 입지를 굳혀야 할 것입니다.
  • 비평과 담론의 재형성, 그리고 아카이브
    건축설계의 실행과 더불어 비평과 담론의 재활성화도 중요합니다. 2000년대 초까지 가득했던 담론과 이를 실었던 매체, 활동의 장이 하나 둘씩 사라지면서 건축계에서는 소수의 사람들과 단체만의 노력으로 비평과 담론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평과 담론은 우리 건축 작업의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고 위치를 파악하게 하며 방향을 알려줍니다. 2010년 초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전시를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건축 아카이브와 목천건축아카이브 등 아카이브 및 큐레이팅 문화도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카이브 작업은 건축가와 그들의 작업, 생애, 당시의 시대 상황, 정치 사회 이슈, 구축 재료 및 기술 등을 충실히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와 전시를 꾸려나가며 사회와 대중, 역사에 연결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이제 서야 전 세대의 건축가를 보유하게 된 건축 신생국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미래의 경쟁력은 우리의 역사로부터 시작됩니다.

변방에서 변화의 중심을 꿈꾸며

15년 전, ‘세계 속의 한국 건축’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의 일입니다. 연사는 한국에서 저명한 건축가였으며, 해외에서도 여러 매체와 전시에서 다뤄지던 인물이었습니다. “한국은 세계의 건축에서 제3국의 위치에 있다.” 냉정하고 자조적인 표현에 듣는 놀라움과 의아함도 잠시. 국내의 빈약한 기반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세계의 한국건축에 대한 인식은 더욱 요원하다는 것을 그의 짧은 답변에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동안 주류라 인식되지 않았던 한국의 다양한 문화는 기술과 매체의 발달, 탈중심과 다원주의적 시각으로 세계 곳곳에서 꽃피고 있습니다. “변방은 변화를 일으키는 진원지다. 변방이 변방으로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그곳이 변화의 공간이자 창조의 공간이고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2012) 오랫동안 세계의 건축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건축. 새로운 중심을 향한 변화와 창조를 위한 기회는 지금 여기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이명진. 첨단설계부문 대표이사. 2004년에 입사해 디자인랩과 설계그룹에서 디자인을 이끌어왔으며 2024년 첨단설계부문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업무, 교육 연구, 의료,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분야의 건축 작업을 수행했고 한국건축문화대상, 대구시건축상, 녹색건축 국토교통부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 현대자동차 하이테크센터, 카카오 제주 아지트, 이대서울병원,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원주세브란스 기독병원, 울산과학기술원 이차전지 산학연 연구센터, 대구은행 제2본점, SK 서린빌딩 뉴 워크플레이스 컨설팅이 있다.

연관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