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 관계.
건축을 존재로 볼 것인가, 관계로 볼 것인가?
서구의 존재론적 시각은 만물을 존재, 즉 ‘체(体)’로 인식한다면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만물은 관계, 즉 ‘간(間)’으로 인식한다. 서구신학은 신의 존재를, 동아시아의 유교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주요하게 인지하는 시각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건축을 체로 이해하면 외부자가 바라보는 존재로서 형태, 공간, 색채 등 ‘어떠한 모양’인지, ‘시각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이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건축을 간으로 이해한다면 자연과 건물 사이, 마당과 건물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 등으로 ‘관계 맺는 사이’가 주요 관심사다. 체로 이해하는 사과는 어떠한 시공간에서든 그 모습이 불변하나, 간으로 이해하는 사과는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씨앗으로, 나무로, 꽃과 열매로 계속해서 변모하는 생의 과정 그 자체다. 인간도 땅과 하늘이 만나 탄생하여 자라고 소멸하는 생명이다. 집 또한 마찬가지다. 체의 관점에서 집은 그 자리에 고정되고 정지되어 있다면, 간의 관점에서 집은 자연과 생명체의 기거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건축은 체와 간 무엇 하나도 완전히 배제해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균형’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1929)은 서구 건축에서도 체와 간의 균형을 보여 주는 좋은 예시다. 서울상공회의소 증축설계 당시(2005)에도 건축물을 주체로 드러내기보다 남산이라는 자연, 숭례문이라는 역사,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숭례문의 좋은 배경으로 남도록 설계했다.
좋은 건축은 ‘체와 간이 균형을 이루는 건축’이며, 필요에 따라 변화할 줄 아는 생명체다. 체가 강조되면 간이 위축되고, 과도한 체와 간의 불균형은 병듦을 낳는다. 근대 이래 ‘체’에 편중되어 비대해진 시각(視覺)의 균형을 맞추려면 ‘간’의 관점으로 건축을 짓고 건축과 감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