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림건축 디자인 정체성을 고민하는, 기현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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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건축의 디자인이란 ‘공통의 느낌’을 설계에 담기 위해 부단히 질문하고 토론하는 조직설계 문화에서 비롯한다. 이에 기반해 정림의 작업들은 다양한 시대상을 반영해 왔다. 정림 디자인은 고정되어있기보다 60여 년의 시간축을 따라 수렴하는 동시에 미래로 계속해서 확장해 가는 중이다. 디자인에 대한 인식의 확장과 전환이 필요한 지금, 다름 아닌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특히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한 디자인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일시. 2022년 2월 15일
인터뷰이. 기현철
인터뷰어. 박성태, 장혜인

턴키 시절 디자인 방법

정림에 입사하실 때 상황을 여쭤볼게요.

제가 대학 다닐 때에 정림은 최고의 설계사무소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졸업하고 바로 프랑스 유학을 갔다보니 머릿속에 그 기억과 명성이 남아있었지요. 베르나르 뷜러 아뜰리에에서 팀장으로 일하다 2008년 귀국해 이필훈 대표와 면접을 보고 입사했어요. 저는 프랑스에서 리모델링과 공동주택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했었고, 정림은 여타 국내 설계사무소들처럼 알제리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지역을 한창 사업지로 고려하던 때였어요. 그래서 주거본부와 해외사업본부에 지원했었는데 설계3본부에 PD(프로젝트 디자이너)가 없어서 3본부로 배정받았습니다. 당시 박종남 님이 본부장이셨어요. 2007년은 회사가 다소 어수선하던 시기였는데 국내 회사 경험은 정림이 처음이었다보니 ‘아, 원래 다들 이런 분위기인가보다’ 했었죠. (웃음)

변화가 크셨네요. 당시 한국 건축계는 턴키 방식의 일괄입찰이 대부분이라, 디자이너의 역할도 조금 달랐죠. 설계안을 리뷰할 때도 동료들에게 심사위원 역할이 부여되곤 했어요.

현상설계는 당선이 목표이니 심사 현장 시뮬레이션이 더 필요했던 거죠. 게다가 그때는 매트릭스를 짜서 알트를 만들었거든요. 예를 들어 심사에서 중요한 방향성 하나, 둘, 셋, 넷, 행을 만들고 설계 조건에 맞춰 디자인한 경우의 수 네 가지, 그러면 4*4 = 16가지 안을 내는 거지요. 건설사가 한눈에 보고 택하게 하려면 결국 이 안과 저 안의 장점을 섞어서 만들게 되어요. 다수가 동의할 수 있도록 너무 모나지도 너무 평범하지도 않은 안으로 절충되어 가는 과정을 차차 알게 되었고, 그렇게 이해하면서 생각을 바꾸는 과정이 한 3년 걸렸네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요즘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예전처럼 알트를 많이 만든다거나 DR과 TR을 열심히 하기보다 프로젝트 담당 디자이너에 권한을 더 부여하는 쪽으로요.

맞아요. 이제는 그렇게 진행하는 경향이 많이 줄었지요. 현재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알트를 많이 만들어내는 일은 여건상 불가능해졌고, 그만큼 TL과 프로젝트 팀이 디자인을 이끌어가요. 예전처럼 턴키로 촉발된 비효율적인 방식이 물론 좋지만은 않아요. 다만 공사비와 공기 등 모두 동일한 조건이었으니, 그 많은 알트들 가운데 하나의 안이 선택되는 기준만은 분명했어요. ‘디자인’, 즉 차별성 있는 계획안이었던 거지요. ‘턴키 디자인이 건축을 망쳐놓았다’는 평이 있듯 수준의 편차는 있어도 분명 화두의 중심에는 디자인이 있었어요. 턴키 시대가 좋았다는 뜻이 아니라, 디자인에 관한 소통과 관심을 점차 회복시킬 필요성이 있지 않나 합니다. 정림 같은 조직설계에서 유일한 소통 기회는 디자인 리뷰니까요.

정림건축의 디자인 정체성과 조직설계 방법론

올해(2022)부터 정림건축 디자인 책임자로서 일하기 시작하셨어요. 어떤 생각과 고민이 많이 드시나요?

아무래도 중심 화두는 정림 디자인 정체성과 조직설계 방법론이겠죠. 제 나름의 주관과 논리로 조직설계를 정의해본다면 ‘어떤 공통된 느낌을 가진 다양성’이라 생각해요. 이 다양성은 차이의 난립이 아니라 어느 정도 결이 비슷한 특성을 말해요. 건축에 관심 있는 분들과 바깥에서 건물들을 보다 보면 ‘저건 왠지 정림 설계 같은데’하는 감상을 종종 들어요. 어쩌면 그것이 정림에서 추구해온 조직설계의 원형이자 뿌리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그 ‘공통의 느낌’은 무엇이며 어떻게 날카롭게 다듬어 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경력 입사자들 중에는 그간 친숙했던 건물들이 정림 설계였던 사례들을 상당히 많이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건축가라면 공공을 우선하고 주변과의 조화, 컨텍스트의 반영 등을 강조하기 마련인데, 정림은 도시 생태계의 하나로서 건물이 존재하게끔 설계하는 감각이 탁월하다고 합니다.

그게 55년 간의 경험이고, 사람으로 따진다면 연륜인 거죠. 원숙한 건축가의 깊이와 연륜은 젊은이와 다르듯이 정림도 1967년에 시작된 회사인 만큼 이제는 원숙한 단계라 봅니다. 현재 정림과 비견되는 대형 설계사무소 대부분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턴키로 수행하던 90년대와 2000년대에 성장했습니다. 눈에 띄는 랜드마크와 상징성, 조형성과 파격성에 중점을 두던 시대였지요. 이들도 조직 단위로 설계하는 만큼 업무 방식이나 조직 체계를 비슷하게 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무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비전은 전혀 다른 궤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림에서 일하시면서 정림이 갖는 ‘공통의 느낌’을 실질적으로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그 요소들을 탐구하려던 시도가 작년 동안 게시판에 연재했던 〈발칙한 디자인 분석〉이에요. 여섯 가지 범주 즉 기능, 장식, 파사드, 공공성과 한국성, 컨텍스트 등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주된 흐름(main stream)이 있었고 이에 맞는 프로젝트들과 아이디어들을 보고자 했어요. 쉬운 예를 들어 동일한 연면적일 때 타워 하나를 짓는 방법과 건물동을 두세 개로 나누어 설계하는 방법이 있다면 정림은 가능한 한 전자를 택하려 들지 않아요. 건물과 건물이 만들어내는 사이 공간이 느껴지도록 매스들을 배치하는데 그 근본에는 휴먼 스케일, 컨텍스트와의 조화,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있는 거죠. 디자인으로 주변을 압도하기보다 좀 더 부드럽고 친화적으로 설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내 디자인 교육도 있었고, 소위 DP 제도로 디자이너 그룹을 형성해 선배와 후배, 엑스퍼트와 주니어가 함께 디자인 담론들을 만들어내려 했어요.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이를 이끌어내고 싶으신지.

지난 해 연재한 디자인 이야기를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어요. 더 나아가 ‘저는 관점이 좀 다릅니다’라는 깊이 있는 토론까지 가려면 오프라인 모임이나 소규모 토크 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요. 그게 무거운 제도로 틀을 굳히고 강제해서 만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하고요. 그런 분위기나 문화가 자리 잡도록 활성화하는 장은 많이 만들려 해요. 시니어 내지 대표 디자이너들이 그룹별로 모여서 프로젝트 진행 상황과 이슈들, 현상설계와 클라이언트들의 요구사항 변화 등을 이야기 나누는 자리도 중요하다고 보고요.
더불어 주니어 디자이너들도 본인의 창작 기회와 재능을 발현할 수 있도록 사내 현상공모를 활성화하려 합니다. 신인 디자이너들을 포함한 정림 설계 인원 500여 명이 지닌 가능성을 발현시킬 수 있다면 개인에게도 회사에도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마지막 사내 현상공모가 여수 엑스포(2012)였는데, 이 끊어진 맥을 다시 부활시키되 각 그룹과 개인들에게 너무 부담스럽지 않도록 저와 NID 본부(현 디자인기술 통합지원센터 SU)가 많이 노력하려 합니다. 디자이너 본인의 역량은 결국 교육보다 실전에서, 프로젝트를 통해 더욱 성장한다고 봅니다.

주요 프로젝트 1.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프로젝트 이야기들 여쭤볼게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하 역사박물관) 리모델링 작업에 참여하셨지요?

네. 역사박물관은 크게 세 단계가 있었어요. 처음 아이디어 현상설계 때는 백의현 님이 리딩하신 정림 안이 당선되었고, 이렇게 뽑힌 안들을 상대로 턴키 공모를 냈죠. 당시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던 시점에서 신속히 진행해야 했거든요. 아무튼 그런 턴키가 두 번째 단계였습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연유는 프랑스에서 리모델링 작업 경험이 많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중장기 발전 계획으로 제시한 안. 주한미국대사관이 이전하고 확장한 모습의 디자인이다. 실현되지는 못했으나 북측 의정부 터로 이어지는 브릿지, 박물관과 대사관 건물의 연속적인 입면 등이 특징이다. (2011 정림건축 연감집)

실시설계 진행하고 설계 자문위원들과 서울시와 협의하면서 업무 범위가 줄었지요. 의정부 터 방향으로 이어지는 브릿지를 통해 역사박물관과 작은 공원(광화문 시민열린마당)을 연결하고자 제안했는데 이 역시 제외하게 됐어요. 아쉬운 부분 중 하나예요. 설계 범위가 축소됨에 따라 입면도 좀더 단아하게, 유글래스(U-Glass)라는 재료를 활용한 안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가 제 역할이었고, 이어 백의현 님이 실시설계하시고 김명진 님 TL로 완성하게 됐죠. 백의현 님이 시작해 제가 중간에 만들고 다시 백의현 님이 완성한 셈입니다.

중간 계투 역할이셨군요. 프로젝트 기간이 길어지면 여러 명이 참여하게 되는 구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호흡이 긴 대형 프로젝트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봐요. 저 역시 프로젝트 상황과 규모에 따라 진행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우리 회사에는 10년이 넘어가는 프로젝트부터 깔끔하게 일년 내지 일년 반 안에 끝나는 프로젝트까지 있는데, 후자처럼 기간이 짧으면 처음 인원으로 마지막까지 가도록 하자는 의견들이 많아요. 주니어든 시니어든 본인이 주도할 수 있고, 실제 팀으로서 수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연속되어야 건축가로서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2012년 준공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세종대로 전경. 기존 콘크리트 구조체와 이격시켜 만든 입면에는 유글래스를 활용했다. 박물관은 창호지 같은 반투명한 질감으로 광화문광장과 경복궁이 자리한 도심을 온화하게 마주한다.

주요 프로젝트 2. 평창올림픽 개폐회식장

정림에서 디자인한 프로젝트 중에 ‘내 작업으로 손꼽을 만하다’, 생각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평창올림픽 개폐회식장이요. 올해 베이징 올림픽 했으니 딱 4년 지났네요. 전 세계 몇십 억 인구가 한 번은 보았을 만큼 상징성도 있고요. 평창올림픽 직전이 소치올림픽이었는데, 개폐회식장 베뉴(venue)가 역대 가장 화려했던 올림픽이라 비교되었을 뿐더러 예산이 절감되는 상황이라 굉장한 압박감이 있었어요. 여러 상황 속에서 고민했을 때 ‘가설 건물로 짓자, 끝나면 완전히 철거해서 대지 원형으로 돌아가도록 하자’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의자도 자연 경사를 이용해서 놓고, 바람은 가림막으로 막자. 예산이 풍족했더라도 아마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평창올림픽 개폐회식장 준공 후의 모습과 경관조명을 받고 있는 외피의 PVC 메시

올림픽 경기장은 야간 경관이 중요해요. 개폐회식과 방송을 밤에 하니까요. 그러면 경관조명을 받은 건물은 마치 가수의 무대의상처럼 활용되어야 해요. 그러니까 이 건물의 기능은 조명을 잘 받은 모습으로 행사를 선보이는 거죠. 이를 위해 겉면에 PVC 메시를 이용했어요. 재질 자체에 미세하게 타공이 있어 은은하게 빛을 먹는 효과가 뛰어나죠. 바람이 거센 현장인 만큼 일대일 목업이 끄떡없는지 검증하는 기간도 몇 개월 간 거쳤고요. 공사장 가림막으로 흔히 이용되는 저렴한 소재라 비용도 상당 부분 절약하고 철거도 한결 쉬웠어요. 두루말이로 둘둘 말아 가져가면 되거든요. 화려해 보여도 검박하게 지은 건물입니다. 그렇다고 마구 지어올리지도 않았습니다. (웃음) 가설 건물일지라도 올림픽 개폐막식에 걸맞는 행사 프로토콜이나 IOC 규정을 다 맞춰야 합니다. 이를 위해 IOC에서 파견 나온 기술위원들과 워크샵을 다수 진행했었어요. 설계를 검증받고 다시 충족시켜가는 과정을 반복하느라 꽤나 복잡다단했던 기억이 납니다.

평면 계획이 사각형과 오각형, 두 가지가 있었어요.

원래는 사각형 계획이었어요. 양쪽에 스탠드를 두고, 뒷편 산지와 구릉에서 내려오는 경사를 따라 디귿자로 계획했지요. 철거하고 나면 원래의 고원훈련장 모습 그대로 쓸 수 있고 공사비 측면에서도 가장 심플한 구조였고요. 당시 연출을 맡았던 총감독이 ‘소치 때는 원형경기장으로 굉장히 화려했는데 이렇게 계획하면 감독으로서 연출의 폭이 좁아진다, 원형으로 해달라’는 의견을 주셨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대지를 다 밀어서 진짜 스타디움을 만들어야 되거든요. ‘취지와 맞지 않게 됩니다’, 하여 절충한 것이 오각형 평면이었습니다. 올림픽 오륜기의 ‘5’도 연상시키면서 땅의 경사도 활용할 수 있도록요. 저도 초기안을 더 좋아했었지만 감독의 입장 역시 충분히 이해했고요.

평창올림픽 개회식 모습

사실 오각형으로 계획해서 좋은 점이 있었어요. 개폐막식에서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순서는 다름아닌 선수 입장이에요. 첫 번째 그리스로 시작해서 두 번째, 세 번째, … 마지막으로 남북한 단일 선수단, 이렇게 하나씩 입장해서 한 바퀴 돌고 퇴장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오각형으로 하고 났더니 출입구를 한 군데씩 더 뚫을 수 있게 되었어요. 두 국가가 양쪽에서 각각 동시에 입장해 한 바퀴를 같이 돌 수 있게 된 거죠. 시간도 반으로 줄고 겨울이라 추우니까 ‘그러면 본행사를 더 충실히 할 수 있겠구나, 그것 좋은 생각입니다’ 했었죠.

흥미로운 이야기예요. 올림픽 스타디움은 일련의 과정을 거친 공적 작업이지만 개막식과 폐막식만 치르니 건물의 화려한 부분 전부를 경기장으로 활용하지 못하잖아요. 철거가 가능한 가설 건물로 계획하신 것도, 올림픽이라는 대규모 행사가 치뤄지는 과정이 친환경적이지만은 않기에 더욱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그러면 다 철거된 거지요?

다 철거됐어요.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웃음) 현재는 본관을 제외하면 대지 원형 그대로 남아있고요. 다행히도 올림픽 기간 동안 기후 조건도 그렇게 춥지 않았고, 지붕이 없는 덕분에 드론 비행과 같은 무대 연출도 가능했어요. 임시 건물이라 어떤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었고 우리나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올림픽이라, 제 기억 속에 남아있고 제게 가장 의미 있는 대표작입니다.

주요 프로젝트 3. LG ThinQ Home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요?

현상설계 당시에는 ‘미래주택’이라는 키워드만으로, 사업 의도를 명확히 전달받지 못했어요. LG하우시스와 LG전자가 함께 한다니 대량생산이 가능한 미래 주택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라고 판단했지요. 큐브 형태의 모듈로 여러 조합과 변형을 만드는 주택 시스템으로 구상했었어요. 현상에 당선되고 계획이 진행되면서 프로젝트 방향이 ‘에너지 세이빙’, ‘스마트 홈’으로 전환되었고 이에 따라 설계도 좀 달라졌지요. 제로에너지 주택 사례들에서도 보이듯 태양광은 지붕으로 받아들이는 면적이 압도적이라 평지붕보다 박공지붕일 때 더욱 유리할 수밖에요. 그리고 미래에는 도시도 인구도 과밀화되는 환경에 가까워질 텐데, 그럴수록 오히려 인간은 ‘집’ 하면 떠오르는 가장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모습을 원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집이라는 이미지로 가장 친근한 박공지붕 형태가 맞겠다고 판단했어요. 에너지 효율과 정서적 의미 모두를 충족하려 했습니다.

공간계획이나 평면에서 주목해서 볼 부분이 있다면요.

빌라 사보아는 르 코르뷔지에의 대표작이자 근대건축의 5원칙이 적용된 주택으로 중요하지만 실은 ‘집에 자동차를 들이자’는 조건에서 시작된 거예요. 미국에서는 포드가, 프랑스에서는 르노가 한참 만들어지고 있던 시기에 건축주 사보아도 마침 차를 샀고, 이 차를 집에 주차하고 싶었던 거예요. 따라서 필로티가 만들어지면서 주차장이 마련되었죠. 자동차라는 기술을 집으로 들이는 조건이 건축을 발전시킨 셈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에서, LG전자가 보유한 기술이 주거를 바꾼다면, 근대건축 5원칙을 2020년대로 불러온다면 무엇이 가능해질지 하나씩 비교해보았죠. 5원칙 중 하나인 ‘자유로운 평면’은 ‘키네틱 플랜’, 즉 움직이는 평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벽체가 움직이면서 공간에 변화를 불러오는 거지요. 그래서 ‘스마트 월’이라는 이름의 움직이는 벽을 계획해 두었어요. 마침 LG전자에서 환기 장치나 TV를 내장한 벽체 모듈 자체를 제작해낸 상품도 있었고요.

ThinQ Home의 외관. LG와 정림건축에서 자체 개발한 BIPV 모듈이 적용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집은 외관도 중요해요. 주택의 외피를 이루는 푸른색 재료 전체가 BIPV인데요. 태양광 패널이 미관상 아쉬운 경우가 전부터 많았기 때문에 아예 건물의 외장재로 일체화시켰어요. LG전자와 정림이 하나하나 디자인하고 실험해서 제조한 모듈입니다. 생산부터 활용까지 가장 보편적인 타일 사이즈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더 큰 목표를 그려본다면 이것을 현장 어디서든 건축자재처럼, 보통의 타일을 쓰듯 상용화시키는 겁니다. 에너지 생산 측면에서도 PV 패널이 적정 크기를 지니면 에너지를 건물에 딱 필요한 만큼만 발전해낼 수 있으니 낭비가 없죠.

디자인 인식 확장과 전환

정림에서의 디자인, 정림의 디자이너란 우리의 여전한 숙제이자 뜨거운 감자인 듯해요. 앞으로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어나가면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시스템과 제도로도 현실적인 변화를 꾀하실 텐데요. 3년 후, 5년 후 정림의 모습에 대한 상이 있으시다면요.

저는 디자인에 대한 인식의 확장과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영미권에서 디자인이란 건축의 상위 개념입니다. 건축, 어반 플래닝, 인테리어부터 랜드스케이프까지 모두를 디자인에 속한 행위로 규정하지요. 반면 유럽권 대부분은 건축의 예술적·조형적·감각적인 부분을 디자인이라 일컫기도 해요. 정림은 이 두 가지 생각을 다 갖고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 흐름으로 규정짓기 어려운 지점이 여기서 비롯합니다. 정림 디자인을 정의하는 일, 건축가·디자이너 크레딧 등의 주제들이 현재 실타래처럼 꼬여있는 상황이라 봅니다.
예술적인 조형성이나 프로포션의 완성도, 양식과 스타일을 따지는 일은 구시대적인 인식입니다. 건축계에서도 건축 영웅과 거장들을 추앙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사회와 환경을 고려하고 또 그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우선하는 양상이 예민하게 드러나고 있어요. 프리츠커상 수상자 경향을 보더라도 2021년의 라카통 앤 바쌀(Lacaton & Vassal), 2018년의 발크리슈나 도시(Balkrishna Doshi)가 그렇지요. 미래가 건축가에게 기대하는 비전이자 디자인은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정림이 올해 기후위기 및 탄소절감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관한 화두를 꺼내기 시작한다는 건 매우 앞서나가는, 또 지향해야 할 관점이라 봅니다. 이것이 곧 ESG라는 표현으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정말로 정림건축이, 건축 디자인 회사로서 의지를 갖고 실현할 수 있는 ESG 활용 방안에 집중한다면 그것이 가장 트렌디하면서도 가치 있는 정림 디자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현철. 1969년생. 현재(2025) 설계부문 디자인 기술 통합지원센터 SU 디자인파트 파트장.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프랑스 보르도 국립건축조경학교(ENSAP Bordeaux) 졸업, 2001년 프랑스 건축사DPLG 취득 후 베르나르 뷜러(Bernard Buhler)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2008년 정림건축에 입사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2010-12), 광주남구 종합청사 리모델링(2011-13), 평창올림픽 개폐회식장(2015-17),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증축 현상 당선(2017), LG ThinQ Home(2019-20) 등 다수 프로젝트 및 설계 경기에 참여했다. 정림의 대표적인 디자이너 중 한 사람으로서 정림건축의 디자인 정체성과 설계 방법론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